[아직 살만한 세상] 서강대 청소노동자들이 학생들 위해 차를 끓이는 까닭… ‘아름다운 동행’

입력 2017-12-21 09:00 수정 2017-12-21 09:00
사진=이소연 인턴기자 /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 서강대분회 사무실에 있는 서강대학교 학생들의 응원 메시지판

“학생! 추운데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가요.” 듣는 것만으로도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1년에 두 번,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초봄과 늦가을의 서강대학교 캠퍼스에서 울려 퍼지는 말입니다. 커피숍, 혹은 푸드트럭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기분 좋은 외침의 주인공은 바로 서강대 여성 청소노동자들입니다.

대학생들이 열악한 처우를 받는 학교 경비원이나 청소노동자들을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소식은 종종 들려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학생들에게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은 조금 새롭고 놀랍게 다가옵니다. 서강대 청소노동자들은 어떤 계기로 이 훈훈한 나눔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요. 지난 15일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 서강대분회 김희숙 분회장을 만났습니다.

김희숙 분회장 역시 서강대학교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는 청소노동자입니다. 서강대에는 모두 93명의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 오후 4시30분까지 일하고, 주말과 공휴일은 쉴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해서 받는 급여는 한 달에 160만원 정도입니다. 결코 넉넉하다고 할 수는 없는 금액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학생들에게 ‘차 나눔 행사’를 열게 된 이유는 “학생들에게 고마워서”라고 합니다. “손주 같은 학생들이 항상 밝게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고마워서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자 시작하게 됐죠.” 그렇게 시작된 차 나눔 행사는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행사 준비를 위해 근무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야 하지만, 이를 받고 기뻐할 학생들을 생각하면 힘들지 않다고 합니다.

사진=서강대학교 학생자치기구 '맑음' 제공

차 나눔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12시까지 2시간 동안 서강대학교 내 거의 모든 건물에서 진행됩니다. 이곳에는 커피부터 율무차, 녹차, 보리차까지 다양한 차들이 준비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인기가 높은 메뉴는 청소노동자들이 일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 직접 재료를 준비하고 끓인 대추차입니다. 학생들도 이 ‘정성’의 맛을 알아봤나봅니다.

사실 차 나눔 행사보다 더 먼저 시작된 것이 있었습니다. 서강대 개교 60주년이었던 2010 년 청소노동자들이 처음 마련한 ‘민들레 홀씨 장학금’입니다.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소외된 이들에게 날아갈 홀씨가 되라’는 의미로 장학금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매년 2명을 선발해 100만원씩 지급합니다.

사진='맑음' 제공. '민들레 홀씨 장학금' 장학생 모집 공고 포스터

그런데 안타깝게도 올해는 지원자가 없어 장학생을 선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학생회가 꾸려지지 못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들어가면서 홍보와 선발을 담당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김 분회장은 “전에도 지원자가 없어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는 동아리 학생들 중 선발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본래 의미를 잃게 돼 올해는 보류됐다”고 전했습니다. 2018년에는 꼭 이 따뜻한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요.

장학금 마련을 위해 또 하나의 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어머니 손맛 주점’입니다. 매년 5월 열리는 봄 축제에 서강대학교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요리사로 변신합니다. 부침개와 달걀말이, 묵무침 등이 대표 메뉴인 이곳은 ‘어머니 손맛’이라는 이름답게 맛도 있어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 주점으로 꼽힙니다. 이 주점에서 얻은 수익금이 바로 ‘민들레 홀씨 장학금’이 되는 거죠. 분회원들은 여기서 얻은 수익금 외에도 적게는 2000원, 많게는 10만원까지 모금을 통해 보탭니다.

축제 주점부터 장학금, 차 나눔 행사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행사를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이어 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김 분회장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교에게 감사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학교 측에서 대우를 참 잘해주세요. 이 나이에 우리가 어디 취직할 곳도 없는데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죠. 학교 휴강일이나 교직원 휴가 기간에도 쉴 수 있고, 월급도 밀리지 않고 지급되고요.”

사진='맑음' 제공

이렇게 학생들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분들에게 서강대학교 학생들은 보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2011년 시작된 학생자치기구 ‘맑음’입니다. ‘맑음’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을 위해 학기 중에 배움 교실을 열고 있습니다. 꽃꽂이, 네일아트, 줌바댄스, 그림으로 보는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수업 과목은 매우 다양합니다. 강의는 학생들의 재능기부, 혹은 강사 초빙을 통해 진행됩니다.

사진='맑음' 제공

학생들과 함께하는 수업에 대한 분회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었던 수업은 ‘수화 교실’입니다. 김 분회장은 “올해 봄학기와 가을학기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수화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수화로 노래 부르기를 배웠는데 아주 재미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유대감도 끈끈합니다. 학생들은 학교 밖에서 만나도 알아보고 인사를 해준다고 합니다.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었는지를 묻자 김 분회장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습니다.

“얼마 전 일이었어요. 조그만 열람실 하나를 청소하고 있는데, 항상 일찍 와서 공부하는 학생이 물을 쏟았더군요. 이를 걸레로 닦아주고 있는 사이 학생이 밖으로 나가기에 방해되지 않으려고 자리를 피한 줄 알았는데, 잠시 후 커피 한 캔을 뽑아들고 왔더라고요. 괜찮다고, 학생 먹으라고 했는데 본인은 있다면서 계속 권하더군요. 그 마음이 너무 예뻐 고맙게 받았습니다.”

최근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습니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거나, 휴게 공간이 제공되지 않는 등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이러한 상황을 단번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부터 먼저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은 어떨까요. 개인의 작은 행동들이 모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번져나간다면 세상은 조금씩 변할 수 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