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뇌물공여 혐의 재판에서 부적절한 증언 태도로 법정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최씨의 필사적인 자기방어와 신경질적인 대답이 계속되자 판사마저 언성을 높였다.
최씨는 20일 서울고법에서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과 삼성 전직 임원 등 5명의 뇌물공여 혐의 항소심 15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씨는 1심 때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지만, 딸 정유라씨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 정황에 대해서는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했다.
최씨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을 향해 “질문을 정확하게 하라”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는가 하면, 재판부에 “질문을 하나만 더 받고 쉬자”고 요구했다.
특검팀은 “지난해 1월 11일 삼성전자 황성수 전 전무가 박상진 전 사장에게 170만 유로의 그랑프리급 마필 ‘카푸치노’ 구매를 허가해 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왜 그랬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최씨는 “무엇을 묻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특검팀이 “정씨의 마필과 관련이 없느냐”고 다시 묻자 “(정)유라를 위해 (삼성이 지원)했다는 건 인정할 수 없다. 이것(삼성의 승마 지원) 자체가 유라를 위해 시작한 게 아니다. 그런(뇌물 목적의 지원) 전제로 물어보면 내가 할 말이 없다”고 되받았다.
최씨는 “170만 유로의 말 구입 논의는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계약이 안 돼 기억이 안 난다”고 했고, “카푸치노 매매계약을 실제로 체결했다”는 질문에 “카푸치노?”라고 반문하며 “난 그걸 모른다”고 말했다.
특검팀이 “2015년 10월 19일 매매계약이 이뤄지기 전부터 (삼성에서) 그랑프리급 말을 구입해 주기로 이야기가 됐는가”라고 묻자 최씨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 뒤 “독일을 한번 갔다 오든 말에 대해 연구하라. 돈으로 밀어붙이니 이해가 안 된다”고 답했다.
특검팀이 “안종범(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수첩에 ‘지난해 1월 12일 박원오(전 대한승마협회 전무) 좌지우지’가 (적혀) 있다. 안종범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들었다고 한다”고 하자 최씨는 “아우~” 하며 짜증을 냈다.
특검팀이 “증인 선서를 하지 않았는가. 말을 잘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최씨는 “기억이 안 나는 것은 안 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받아쳤다. 특검이 “기억이 안 나는 것인가. 아니라는 것인가”라고 다시 묻자 최씨는 “기억이 안 나는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재판 내내 특검팀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특검팀의 질문을 끊고 대답하거나 오히려 질문하며 대답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재판부는 최씨를 향해 “끝까지 듣고 답하라”고 질책했다. 최씨가 특검팀에 질문할 때 재판부는 “오늘은 특검 질문에 증인이 대답하는 자리”라고 언성을 높였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