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도쿄 번화가인 시부야역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인권 후진국을 향하고 있다며, 위안부 문제를 풀어야 일본에 만연된 여성 폭력도 해결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0개 시민단체가 모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전국행동)’이 주최한 집회는 지나던 시민과 젊은이, 외국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일부는 가던 길을 멈춰 동참하기도 했다. 당시 행사 전체를 기획한 일본 인권단체 피스보트(Peace Boat)의 공동대표 노히라 신사쿠(53)씨를 18일 도쿄 피스보트 사무실에서 만나 행사를 기획하게 된 배경과 뒷얘기를 들어봤다.
노히라씨는 “지난달 집회 때 한국 언론에서 보도된 것보다 더 많은 400여명이 참석했다”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집회로는 이례적으로 큰 규모였고, 참가자의 90%가 일본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부야는 도쿄에서도 젊은이나 외국인 왕래가 많은 곳”이라며 “역사를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위안부 이슈가 인권 문제임을 알릴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앞으로도 집회를 계속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국행동은 당초 집회를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계획했었다. 한꺼번에 3000여명이 길을 건너는 곳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하려 했으나 경찰이 불허했다. 경찰은 민감한 이슈의 집회 주최자들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평소 이런 집회를 하면 우익단체들이 찾아와 대형차에 스피커를 달고 방해하는데 이날은 전혀 없었다고도 했다.
노히라씨는 “위안부 문제는 인권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데도 일본 정부와 언론은 한국에 팽배한 반일 정서의 일환이라고 치부하거나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한다는 식으로 호도한다”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촛불집회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은 전시 중 발생한 비참한 사건을 전후 70여년이 지났어도 피해 사실조차 밝히지 못하는 현실 그 자체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명백한 인권 유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히라씨는 “위안부 문제 해결의 첫 단추는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가해자였으며 여성은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일본 사회에는 ‘사죄 피로감’이 팽배하다. 언제까지 한국에 사죄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측근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도 최근 “전후 72년이 지났는데도 72년 전 역사를 끄집어내 비판한다. 이래서 (일본이) 국제사회 속에서 때로는 뭇매를 맞는다. 이건 이상한 일”이라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노히라씨는 이에 대해 “사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사죄를 충분히 납득하고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독일의 과거사 사죄는 구체적이며 진심을 담았기에 수용됐다는 사실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특히 “일본은 사죄를 했다 하지만 정부 각료들의 망언이 이어진다. 이는 심각한 문제이며 이전의 사죄를 소용없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피스보트는 1983년 일본 대학생들이 과거 군국주의 참상을 인식하고 선박을 이용해 피해국들을 방문, 사죄하면서 시작됐다. 90년대 초반부터 피스보트에서 일했다는 노히라씨는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위안부 피해자를 만났다. 그때마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진실을 밝혀준 할머니들의 용기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1964년생인 그는 자신도 ‘386세대’라며 한국과의 친근함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386세대는 사회를 바꿨지만 일본의 386세대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고 부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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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