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혐의로 법정에 선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공모 관계를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의 결백을 주장한 게 아니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정원 돈을 수령 및 관리한 심부름꾼에 불과했다는 논리를 폈다. 박근혜정부 문고리 권력들이 박 전 대통령 범죄 혐의와 자신들을 분리시키는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이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이 전 비서관 측은 “뇌물죄 공소사실을 부인한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피고인은 당시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정원으로부터 지원되는 자금을 수령·보관하고 전달했을 뿐 어떤 경위로 지원됐는지, 그 돈이 특활비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또 “국정원 자금의 청와대 지원 관련 의사결정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어 박 전 대통령과 공동정범으로 의율 될 수 없다”며 “총무비서관으로서 대통령 지시를 거부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특활비 일부가 청와대에서 사용됐다고 해도 특활비 사업 목적에 반하지 않는다는 항변도 했다.
재판부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며 직접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면 봉투에 담긴 게 돈이란 것을 몰랐다는 거냐”고 재판부가 묻자 이 전 비서관은 “대통령님께서 저에게 ‘봉투가 오면 받으라’는 말씀만 하셨기 때문에 봉투 안에 있는 내용물은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에 재판부가 다시 “5만권으로 5000만원, 1억원, 2억원이면 두께도 얇지 않을 텐데 만져 보면 알 수 있지 않나”고 물었고, 이 전 비서관은 “처음에는 봉투 안에 딱딱한 박스가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고 서류인지 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두 번째 봉투가 왔을 때 ‘이건 직접 보고를 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관저로 갖고 올라 갔으며, 대통령님은 ‘청와대 활동비처럼 관리를 하라’고 말씀을 하셨다. 사무실로 내려와서 열어본 다음에야 돈이라는 걸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맨 처음 전달받은 봉투의 경우 박 전 대통령에게 그대로 전달했다가 그대로 자신에게 내려와 열어보지 않고 보관만 했기 때문에 돈인 줄 몰랐다는 주장이다.
안 전 비서관 변호인은 “피고인이 이헌수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으로부터 돈을 전달받은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면서도 “국정원에서 청와대로 돈이 오는 것만 알았지 누가 보내는 건지, 돈의 출처가 어딘지는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주는 대로 받았을 뿐 그 돈이 국정원의 특활비였는지, 국정원장이 보낸 뇌물이었는지 등은 몰랐다는 얘기다. 변호인은 “설사 국고손실죄가 인정된다 해도 안 전 비서관은 종범에 불과하다”고 했다.
안 전 비서관 측은 이 전 실장에게 개별적으로 1350만원을 받은 건 시인했다. 그러나 직무관련성이 있는 뇌물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두 사람은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2013년 5월~2016년 7월 3명의 국정원장으로부터 모두 33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검찰의 박 전 대통령 대면조사도 예고돼 있다.
재판부는 다음달 9일부터 3~4차례 공판을 진행한 뒤 심리를 종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르면 내년 2월 1심 선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호일 이가현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