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어린이 야뇨증

입력 2017-12-19 09:40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야뇨증이란 5세 이상에서 낮 동안에는 소변을 잘 가리다가 밤에만 오줌을 지리는 것을 말한다.

야뇨증은 태어날 때부터 지속되는 1차성 야뇨증과 최소 6개월 이상 소변을 잘 가리다가 발생한 2차성 야뇨증으로 분류한다. 1차성 야뇨증은 생물학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데 수면 중 각성 장애, 신경 계통 발달의 지연, 항이뇨호르몬 분비의 문제등이 원인으로 추정되며 가족력 등 유전적인 요인이 있다. 이와 달리 2차성 야뇨증은 정서적인 장애와 밀접히 연관돼 약물치료만으론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초등학교 1학년인 K는 어릴 때부터 소변을 빨리 잘 가리던 아이였는데 수개월 전부터 갑자기 밤에 소변을 가리지 못해 병원을 찾았다. 아이는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주눅이 들어 있었고 말수도 지나치게 적었다. 간간히 단답형으로 대답을 하는 것도 엄마의 눈치를 흘끔 흘끔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했다. 하지만 엄마가 진료실에서 나가자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화를 많이 내요. 제가 잘못해서 화내시는 거지요. 제가 습관이 나쁘다고 고쳐야 한 대요. 그런데 어떤 때는 뭘 잘못 했는지 모르겠는데 엄마는 화를 내고..... 그래서 저도....."하며 울먹였다. 여전히 목소리는 작지만 조금씩 감정을 이야기 했다. "계속 할머니와 살고 싶은데 그건 안 된대요....엄마는 너무 무서워요" "정말 엄마한테 얘기 안하실거지요?" 하며 비밀 보장을 면담을 시작하면서 얘기 했음에도 다시 확인하려고 했다. 불안해 보였다

엄마는 K가 입학하기 전까지 직장 생활을 하다가 아이의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직장을 그만 두고 아이에게 전념했다. 이전까지 K를 키워주던 할머니는 아이가 원하는 것이면 한밤 중에 사다 줄 정도로 매우 허용적이었다. 반면 K의 엄마는 일까지 포기하고 아이를 돌보려니 욕심이 앞섰고, 완고하고 엄격한 성품이어서 K는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조금 힘든 일도 참아본 적이 없는 K는 엄마가 정해 놓은 기준이나 규칙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반면 엄마는 생활의 기본적인 습관조차 익히지 못한 K가 답답하고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시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엄마는 자신이 공들여 이뤄 놓은 커리어를 포기하고 육아에만 올인하니 보상심리가 작용하여 더욱 최선을 다했다. 남편도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혼자서 애를 썼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노력하니 아이의 습관도 잡혀나가고 스스로 할 일을 하는 독립적인 아이가 되어 갔다. 남편과 친척들도 아이가 많이 달라졌다면 엄마를 칭찬하고 인정해 주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K가 밤에 소변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강훈에 순하고 주장을 할 줄 모르는 K는 거부하지도 못하고 순응하며 따랐지만 많이 힘들었던 것이다.

물론 할머니가 아이를 지나치게 만족시켜줘 욕구를 조절할 능력을 키워오지 않은 것이 애초에 문제이기는 했다. 하지만 엄마 또한 정서적 유대감도 형성하지 않은 채 아이의 문제 행동만을 고치려 들었던 것도 문제였다. 자제력은 갑자기 커지는 것이 아니며, 아이의 현재 수준에 맞춰 조금씩 키워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담 후 K 엄마는 "아이는 보이지 않고 아이의 나쁜 습관만 보였던 거 같아요. 아이를 제가 이렇게 만들었어요" 하면 자책하였다. 하지만 지나친 자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를 떨어뜨려 놓고 할머니에게 맡겨 놓았었다는 죄책감이 엄마의 균형감각을 놓치게 만들었고 아이의 '행동'과 '마음'을 골고루 보지 못하게 했다.

특히 인정욕구가 강한 부모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이다. 엄마는 매일 보내던 학원부터 줄이기로 했다. 대신 K와 함께 요리와 운동을 했다. 자연스럽게 학원에 늦거나 숙제를 안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일이 줄어들었다. 서로 몰랐던 상대의 마음을 보게 되었다. 아이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하니 아이를 교육하고 교정하는 '교사'의 마음이 아닌 아이를 품어주는 '엄마'의 자세를 갖게 되었다. 차츰 아이의 마음에도 '엄마'의 자리가 커져갔다.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