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풍선’ 상한액 3천만→100만 검토… 선정적 BJ 사라질까

입력 2017-12-19 07:36

“우리 의원실에 민원이 들어와 있는데 자기 남편이 하룻밤에 별풍선으로 6600만 원을 썼다는 거예요. 이게 가능한 얘기인지 믿어지지 않아서 여쭤보는 겁니다. 어떻게 하룻밤에 6600만원을 쓸 수 있나요?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10월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 김 의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국감 증인으로 출석한 서수길 아프리카TV 대표가 한 사람이 하루 1인 방송 진행자(BJ)에게 후원할 수 있는 금액 한도가 3000만원이라는 설명을 들은 직후였다. 김 의원의 “6600만원 별풍선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서 대표는 “6600만원이 하루에 갈(후원될) 수는 없다”고 답했다. 같은 국감장에 있던 변재일 민주당 의원이 “밤 12시 (이전과) 넘어서 이틀이면 된다(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저는 그렇게까지 가능한지 몰랐다”며 “사실이라면 적절한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별풍선은 아프리카TV 개인방송 시청자들이 BJ에게 후원금 조로 주는 시청료 혹은 사이버머니다. 1인당 하루 3000만원까지 후원할 수 있다. 후원자가 부가가치세까지 부담해야 해 3000만원을 후원하려면 3300만원을 지출해야 한다. 변 의원 말대로 밤 12시 전후 한 차례씩 후원하면 하룻밤에 6600만원을 쓰는 게 가능하다.


BJ가 더 많은 별풍선을 받기 위해 선정적, 자극적 소재를 다룬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가 인터넷개인방송 1일 후원액 상한선을 기존 30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아프리카TV 팝콘TV 캔TV 하트TV 등 8개 인터넷개인방송사업자에 후원금 상한선을 낮추라는 권고안을 전달했다.

방통위는 자극적 영상을 공개할수록 고액 후원금이 돌아가 BJ들이 선정적 방송을 쏟아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후원금 상한선을 두면 BJ들이 한 번에 수백만∼수천만원을 벌 수 없게 된다”며 “‘한탕’을 잡으려 무리한 영상을 만드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기 BJ가 받는 후원액은 월 수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아프리카TV 인기 BJ의 ‘별풍선’ 수익이 높다. 아프리카TV 시청자들이 BJ가 올해 반년 동안 받은 별풍선을 자체 집계해 수익을 추론한 ‘2017년 아프리카TV BJ 상반기 매출 순위’에 따르면 별풍선 순위 1위 BJ가 5억5000만원, 2위 BJ가 4억5000만원을 번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리카TV는 BJ의 수입은 개인정보라 공식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사업자별 하루 후원 한도는 제각각이다. 아프리카TV는 3000만원, 팝콘TV는 무제한, 카카오TV는 70만원, 유튜브는 500달러다. 방통위가 후원금 상한선을 정하게 되면 매체별 후원금 상한이 획일화된다.

인기가 많은 BJ일수록 ‘큰손’ 시청자를 여럿 거느리고 있다. 후원금 상한선이 정해지면 통 큰 후원이 불가능해진다. BJ의 수입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인기 BJ가 후원금을 받아 억대 연봉을 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1인 방송 플랫폼에는 자극적인 영상이 잇따라 올라왔다. 주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나 성(性) 비하, 특정 지역 차별 및 민주화운동 폄훼, 폭력·음란성 영상이 많았다.

여러 부작용도 나타났다. 개인방송을 본 초등학생들이 비속어·은어 등을 따라하며 이른바 ‘급식체’ 신조어를 만들거나 몰래카메라를 찍어 인터넷에 퍼트리는 일이 대표적이다.

별풍선 결제 금액을 마련하려다 범죄에 손을 대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 9월에는 여성 BJ에게 별풍선을 선물하기 위해 무인텔에서 1920만원을 훔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남성은 훔친 돈을 별풍선을 사는 데 한달만에 다 썼다.

지난해 5월에는 회사 공금 수억원을 빼돌려 1인 방송에서 하루 수백만원어치 별풍선을 쏜 20대 여직원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여직원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성 BJ에게 하루 200만∼300만원어치 별풍선을 쐈다.

1인 방송은 그동안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았다. 규제가 상대적으로 엄격한 방송법이 아닌 전기통신사업법을 따르게 돼 있어서다. 1인 방송 관련 피해신고가 급증해 정부가 실제 심의까지 마쳐도 시정요구를 하기는 어려웠다. 지난해 아프리카TV 등 개인방송에 대한 심의건수는 718건이었지만 시정요구를 받은 건 7.7%인 55건에 그쳤다.

1인 방송으로 문제를 일으켜도 처벌 수위는 낮다. 한 유튜브 이용자는 지난 8월 다른 여성 이용자를 살해한다고 위협하는 영상을 유튜브로 생중계해 논란을 일으켰지만 범칙금 5만원 처분만 받았다.

인터넷방송 업계는 자정 노력을 할 시간을 달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애초 정부에 여러 차례 자율규제 방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고 정부도 자율 규제를 존중하는 쪽이었다”면서 “정부가 규제를 서두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도 강조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다른 문화 콘텐츠에 돈을 쓰는 건 규제 않고 1인 방송만 규제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나 이웃 나라 일본에도 결제 상한선 규제가 없다”며 “또 정부가 제시한 권고안의 근거가 모호한 데다 업계에서 애써 가꾼 1인 방송 콘텐츠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6일에는 정부와 1인 방송 사업자 등이 참여한 ‘클린인터넷방송협의회’가 출범했다. 1인 방송에 대한 개선 방안을 함께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구성된 협의체다. 방통위,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와 아프리카TV, 구글, 유튜브 등 인터넷 업계, 관련 학회 등 총 19개 기관이 참여했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협의회 발대식에서 “인터넷에서 창의성과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되 불법·유해 정보는 유통되지 않게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반면 정찬용 아프리카TV 부사장은 발대식 뒤 세미나에서 “아프리카TV에 문제가 있다고 불법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전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아프리카TV의 (산업·문화적) 가치를 제대로 봐달라”고 토로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