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자살자가 많은 도시였다. 1996년 연간 400명 선이던 게 아시아 외환위기와 불황의 여파로 1998년 800명을 넘어섰다. 높은 자살률이 지속되자 요코하마시(市)는 2007년 실태 파악에 나섰다. 설문조사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수집했고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갑작스런 자살은 없다
①자살은 불안과 걱정에서 비롯된다. 매년 실시했던 시민의식조사 자료를 되짚어 보니 1998년을 기점으로 건강 사고 경제력 등 ‘생활 속 불안’을 호소하는 응답이 급증하고 있었다. ‘걱정이 없다’는 응답은 97년 50%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을 거듭해 2012년 10%대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자살자 621명의 자살 동기를 조사한 결과 건강에 대한 염려가 가장 많았고 우울증이 뒤를 이었다.
②자살자는 대부분 사전에 신호를 보낸다. 2010년 시민 6000명을 조사한 결과 16%가 ‘진심으로 자살을 생각해봤다’고 답했고, 이 중 상당수는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그 생각을 표현했다. 그들에게 자살을 포기한 이유를 묻자 28.1%가 ‘타인과 상담해보니 자살 생각이 사라졌다’고 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사전에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며 적절한 상담을 통하면 자살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③자살은 막을 수 있다. 요코하마 경찰이 1년 동안 처리한 자살 627건을 분석한 결과 93%가 요코하마 시민이었고 이 중 86%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인근에서 발견됐다. 자살자 대다수가 거주지 근처에서 자살을 시도한다는 의미다. 요코하마시는 이웃의 작은 관심으로도 자살 위험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시 당국은 세 가지 사실을 종합해 ‘자살은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야시 후미코 요코하마 시장은 직접 거리로 나가 자살예방 캠페인을 지휘하며 시민들에게 외쳤다. “누구든 만나 터놓으면 소중한 목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변에 작은 관심을 기울이면 한결 나아집니다.” “생명을 지키려면 서로 의지해야 합니다.”
요코하마시는 꾸준히 자살예방사업을 벌여 연간 자살자를 지난해 600명대로 줄였다. ‘자살 없는 요코하마’를 목표로 지금도 캠페인이 계속되고 있다.
◇ 종현의 ‘갑작스런’ 죽음
인기그룹 샤이니의 멤버 김종현(예명 종현·27)씨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레지던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 의식을 잃기 전 누나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는 ‘나 보내 달라. 고생했다고 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 메시지에 ‘마지막 인사예요’라는 글귀를 덧붙였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8일 김종현씨가 이 레지던스에서 갈탄을 피워놓은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이날 낮 12시쯤 이곳에 2박 일정으로 투숙한 상태였다.
경찰은 오후 4시42분쯤 김씨의 누나로부터 “종현이 자살하는 것 같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급히 실종수사팀을 파견해 오후 6시10분쯤 이 레지던스에서 심정지 상태인 김씨를 발견했다. 건국대병원으로 옮겼으나 김씨는 사망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숨지기 직전 누나에게 ‘나 보내 달라. 고생했다고 말해 달라’ ‘마지막 인사예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김씨는 2008년 데뷔한 5인조 보이그룹 샤이니의 메인보컬이다. 2014년 2월부터 지난 4월까지 MBC FM4U 심야라디오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진행했다. 청운대에서 실용음악 학사학위를 취득했고, 명지대 영화·뮤지컬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뛰어난 가창력 외에도 음악성을 인정받은 뮤지션이었다. 보컬뿐 아니라 작사와 작곡에도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솔로앨범 ‘좋아’의 9곡 중 8곡을 만들어 싱어송라이터로 홀로서기를 했다. 2015년 그룹 엑소의 ‘플레이보이’를 작사‧작곡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이하이의 ‘한숨’을 작사‧작곡했고 엄정화의 ‘오 예(Oh Yeah)’의 피처링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솔로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지난 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종현 솔로 콘서트 인스파이어드’를 열었다. 2015년부터 최근까지 총 42회 솔로 콘서트를 개최했다. 공연마다 매진 기록을 세우며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도 “나 고생했다” 할 만큼 그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누나에게 보낸 몇 건의 문자는 그런 시간이 누적된 결과물일 뿐이다. 그보다 앞서 주변을 향해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말이 됐든, 행동이 됐든, 일상의 변화가 됐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상황을 알리려 했을 거라고, 심리부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종현이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였다”고 만든 노래가 있다. 2015년 10월 발표한 곡 ‘엘리베이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노래라고 자주 말해왔다. 종현은 이 곡을 발표한 해에 한 라이브 공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같이 현실에 많이 지치고 힘든 분들이 있다면 위로가 되진 않더라도 같은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종현은 이 곡에 이런 가사를 붙였다.
솔직히 말해 봐요
솔직히 말해 줘요
닫히는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모습은
초라하게 남아 그래도 이렇게나마
눈 깜박거리며 숨 내뱉고 사는 이유
날 위해선 맞나 아님 쫓기고 있나
…
솔직히 말해 봐요
많이 외로워하잖아요
솔직히 말해 줘요
더는 무리인 걸 알잖아요
언제부터 혼자였나요?
거울 속 나와 눈 맞추는 게
◇ 자살은 질병이다… 질병은 예방할 수 있다
자살은 질병이다. 재발하고 전염된다. 우리나라는 연간 4만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 온다. 그중 약 8000명이 퇴원 후 다시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의 고통과 절망은 가족과 친지에게 옮겨간다. 2015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심리부검 결과 자살 사망자의 28%는 먼저 자살했거나 시도한 가족이 있었다. 이 치명적인 질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우리는 자살률 세계 1위란 슬픈 타이틀을 얻었다.
자살의 재발은 막을 수 있다. 덴마크는 2000년대 자살 시도자 관리를 통해 34%이던 재시도율을 14%로 줄였다. 국내에서도 효과가 입증됐다. 복지부는 2013년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사업’을 시작했다. 참여한 27개 병원 응급실에는 지난해까지 자살 시도자 1만3643명이 실려 왔다. 그중 사후관리에 동의해 상담과 지원을 받은 6159명의 재시도율과 사망률은 거부한 이들의 절반을 밑돌았다.
서울에선 자살이 가장 많던 관악구가 이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관악구 정신건강증진센터 상담사들은 아침부터 아예 보라매병원 응급실로 출근해 밤새 들어온 자살 시도자를 만났다. 사후관리 프로그램에 등록시키고 정신과 치료나 복지 서비스를 연결해주며 꾸준히 상담한 결과 자살률이 크게 줄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자살 시도자가 마음을 가장 잘 여는 시간이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라고 말한다.
당시 관악구에서 사후관리에 응한 80대 자살 시도자는 “살면서 이렇게 누군가의 관심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신호를 보낸다. 이것을 알아채는 주변의 작은 관심이 바로 자살의 예방백신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