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무연고 탈북 청소년 이제 아무데나 갈 수 있다

입력 2017-12-18 18:34 수정 2017-12-20 14:03

18일 오후 충남 천안시 서북구 갈렙선교회 예배당에서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북한에서 온 세자매가 ‘미성년 후견인 선임’ 소송에서 승소했기 때문이다. 세 자매는 고아원에 가지 않고 목사님 가정에 머무를 수 있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대전가정법원 천안지원(판사 고지은)은 이날 탈북민 정모(20‧여)씨가 15세와 13세인 자신의 두 여동생을 위해 낸 ‘미성년 후견인 선임' 심판에서 이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연고 없는 탈북청소년들이 개인가정으로 후견인을 지정받은 것은 이번이 국내 처음이다.

북한 양강도가 고향인 세 자매는 지난 해 10월 탈북, 중국과 제3국을 거쳐 대한민국 품에 안겼다. 꼭 두 달만이었다.

이 과정에서 탈북민 구호단체인 갈렙선교회의 도움을 받았고 이번 판결로 이 단체 대표 김성은(52)목사의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법원은 김 목사의 부인 박에스더(47·천안서평교회)목사를 후견인으로 결정했다.

세 자매의 어머니 강모 씨는 김 목사 가족과 함께 살길 원하는 편지를 보냈다. 김 목사가 장기밀매범들에게 팔린 딸들을 구출해 주었기 때문이다. 중국공안에 체포돼 강제북송 직전 아이들에게 “목사님을 아버지처럼 믿고 훌륭하게 자라 달라”고 당부했다.

세 자매도 하나원 입소 중에 매일같이 김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했다. 김 목사에게 “아빠랑 같이 지내던 때가 그립다” “하루빨리 아빠랑 신나게 뛰놀고 재미나게 놀고 싶다”라고 했다. 또 “하나원에서 나가는 날 바로 전화할테니 꼭 데리러 오라”고 당부하는 등 김 목사 가족과 함께 지내기를 바랐다.

하나원에 있는 다른 탈북민에게도 “우리아빠는 목사이다. 퇴소하면 아빠가족들과 같이 살게 될 것”이라고 김 목사의 가족을 소개했다.

이에 김 목사는 무연고 탈북 청소년인 세 자매가 보호시설 대신, 이전부터 알고 지낸 익숙한 가정에서 사랑과 애정으로 양육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과 법원에 각각 가정위탁 신청 및 후견인 신청을 냈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통일부에서 위탁받은 무연고 탈북 청소년은 이날 현재 96명이다. 여기에 일부 탈북 부모의 이혼이나 학대, 경제력 등으로 인한 가정불화, 남한정착 후 부모사망 등의 사연까지 포함하면 실제 무연고 탈북 청소년의 숫자는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정부는 이런 무연고 탈북 청소년들을 고아원, 쉼터 등 보호시설로 보내왔다. 개인가정으로 보내면 무연고 탈북 청소년에 대한 관리감독이 쉽지 않고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김 목사는 “제가 구출한 북한고아 신혁이, 미향이 등도 그랬다”며 “아이들이 아빠로 생각하니 입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원은 법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매일 연락오던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보호시설로 보내고 연락을 단절시켰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에 대해 하나원 관계자는 “탈북 무연고 청소년이 퇴소할 때마다 무연고청소년지원협의회를 개최해 보호단체를 선정한다”며 “본인이 희망하는 쪽으로 반영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저희 입장에선 개인가정보다는 그룹홈이나 대안학교 등이 교육 노하우도 있고 검증된 단체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많이 보내온 것이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이 사건 소송대리인 이혜선(법률사무소 서담)변호사는 “그동안 연고가 없는 탈북 청소년들은 고아원이나 청소년쉼터, 복지시설 등 보호시설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판결로 탈북 청소년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원하는 곳, 원하는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세 자매는 “고아원에 가기 싫습네다. 친절한 목사님 가족이랑 함께 지낼 수 있게 돼 너무 기뻐요”라고 입을 모았다.

김 목사는 “탈북고아들이 보호시설 대신 대한민국의 가정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정부는 이제 탈북 고아들이 소송 없이도 가정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