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친박 청산’ 마무리 단계라는데… “별 감흥이 없다”

입력 2017-12-18 08:20

자유한국당이 17일 결과를 발표한 ‘당무감사’는 정밀하게 계산된 조치였다. 주도한 이는 홍준표 대표다. 원내와 원외의 당협위원장 62명의 자격을 박탈했다. 탈락자 명단에 친박계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 친박 현역 의원만 4명이 포함됐다. 홍 대표가 당권을 잡은 뒤 ‘바퀴벌레’라는 험한 말까지 해가며 줄기차게 벌여온 ‘친박 청산’ 작업이 거의 종착점에 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당무감사 결과 친박 핵심인 서청원 유기준 의원과 이보다 계파색이 옅지만 친박계로 분류되는 배덕광 엄용수 의원이 당협위원장 자리를 잃었다. 원외 인사 중에는 권영세 전 주중대사, 김희정 전 여성부 장관 등이 탈락자 명단에 올랐다. 역시 친박계인 류여해 최고위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홍 대표를 비난하며 울먹였다. 홍준표 체제 출범 이후 친박계가 벼랑 끝에 몰렸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자리가 됐다.

홍 대표는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승리해 당 대표에 취임하며 직·간접적으로 친박 청산을 예고했다. 당 윤리위원회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 서청원 최경환 의원에 대한 출당권유 조치를 내렸다. 지난달 4일 홍 대표가 직접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조치를 완료했을 때 친박 구심점이 궤멸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 의원은 홍 대표와 각을 세우며 버티고 있지만 친박계의 다른 축인 최경환 의원은 사실상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았다. 현재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다. 역시 친박계 중추인 원유철 이우현 의원 등도 검찰 조사를 받았거나 소환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홍 대표가 당무감사를 밀어붙이며 내세운 명분은 내년 지방선거였다.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각 지역 당협위원회를 살펴보니 ‘핸드폰 위원장’이 너무 많다고 했다. 제대로 된 조직도 없이 ‘핸드폰’ 하나 들고 여기저기 전화해가며 어설프게 운영하는 지역이 너무 많아 도저히 선거를 치를 수 없는 지경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정비한다며 진행한 감사가 ‘친박계 당협위원장 대거 자격 박탈’이란 결과물을 냈다.

그러나 국민이 요구해온 개혁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친박 핵심인 서청원 의원에 대해선 ‘출당권유’라는 상징적 조치라도 했지만, 그와 함께 1순위 청산 대상으로 꼽혔던 최경환 윤상현 김진태 의원 등 ‘진박’ 정치인 상당수가 당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최 의원이 곤경에 처한 것은 검찰 수사에 의한 상황일 뿐, 한국당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친박계를 청산하고 ‘친홍계’를 만드는 것이냐는 지적도 있다. 홍준표계로 분류되는 홍문표 의원, 김성태 원내대표 등 당권파는 위원장직을 보장받거나 회복할 기회가 주어진 반면, 김무성계 의원들이나 김용태 이종구 의원 등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감사 과정이 과연 ‘개혁’이란 표현을 쓸 만큼 정당하게 이뤄졌느냐는 문제도 제기됐다. 지도부는 ‘정량평가를 통한 객관적 당무 감사’였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 감사 내역은 공개하지 않아 거센 반발을 자초했다.

야권 관계자는 “한국당은 줄곧 환골탈태를 말해 왔지만 지금껏 정말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다. 이번 당무감사도 그동안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과에 대한 감흥과 감동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라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