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이 호주·피지로, 세금 3176만원 펑펑… ‘국회의원 출장보고서’

입력 2017-12-18 07:55

국회의원들의 해외 출장은 ‘의원 외교’를 통해 정부 외교의 보완적 기능을 수행하는 긍정적 측면이 크다. 해외 제도 시찰 등으로 입법수준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의원들의 해외 출장은 취지와 달리 수박겉핥기식으로 운영되거나, 산적한 현안을 내팽개쳐두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

국민일보가 17일 20대 국회가 개원한 지난해 5월 30일부터 올 10월 말까지 의원들이 해외 출장을 다녀와 국회에 제출한 결과보고서 96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해외 출장 일정이 없거나 부실한 보고서 사례들이 다수 발견됐다.

외유성 출장을 의심하게 하는 대표적 사례는 ‘비어있는 일정’이다. 자유한국당 윤영석·윤상현·정양석 의원은 지난해 8월 9∼14일 외교통일위원회 해외 시찰로 피지와 호주를 다녀왔다. 세 의원은 4일간 호주에 머물렀는데, 당시 일정은 ‘교민 안전대책 등 공관 업무 보고’ 등 3건 밖에 없었다. 12일에는 아무런 일정이 없었다. 다음 날인 13일 일정표에는 ‘교민 및 한국업체(지사와 상사) 밀집지역 안전대책 현장 점검 등’을 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결과보고서에는 활동 결과가 없었다. 이들은 출장으로 세금 3176만원을 썼다. 윤 의원은 “일정표에 따라 출장을 간 게 맞다”며 “내 기억으로는 일정이 타이트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무위원회 소속 한국당 김선동·김종석 의원, 민주당 김영주·정재호 의원은 지난해 12월 13∼20일 ‘재정위기 극복현황 및 MICE 산업 현황 조사’를 이유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방문했다. 이들이 국회에 제출한 결과보고서를 보면, 전체 6박8일 일정 동안 1시간 내외의 일정 4개를 소화했다고 기록돼 있다. 일정 모두 ‘시찰’ ‘면담’ ‘방문’이었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조경태·박명재(한국당) 박주현(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4월 6박8일 일정으로 스웨덴과 영국을 방문했다. 이들 의원의 출장 결과보고서에도 2시간 내외의 일정 5개가 주요 일정으로 기록돼 있었다. 박명재 의원은 “실제로 면담을 하다보면 예정된 일정보다 더 길어지는 경우도 많았다”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결과보고서 내용도 부실했다. 보고서 내용은 면담 내용 요약과 면담자 인적사항, 방문국 정보,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조정식·윤관석(민주당) 이찬열(국민의당) 이혜훈(바른정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항공정비사업 및 고속철도사업 지원’ 명분으로 싱가포르·말레이시아를 다녀왔다. 이들이 국회에 제출한 22쪽짜리 결과보고서는 출장자 인적사항, 일정 등을 제외하면 주요 활동을 다룬 부분은 10쪽이었는데, 이 중 절반은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의원들은 이 결과보고서를 쓰기 위해 세금 2695만원을 사용했다.


이원욱·백혜련·강훈식(민주당) 김현아(한국당) 의원도 지난해 ‘도시정책 및 국토정책 사례 조사’를 위해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다녀왔다. 이들은 결과보고서 105쪽 중 45쪽을 현지 대사관 자료를 인용해 방문국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으로 채워 넣었다. 한국 영화제 개최, 농축산물 한국 수출 추진, 재외 동포 현황 등 출장 주제와 관계없는 내용이었다.

전문가들은 국회의원의 해외 출장이 외유성 출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원들의 해외 출국 자체를 문제삼기보다는 의원들이 해외 출장에서 어떤 활동을 했고, 어디에 얼마만큼을 지출했는지를 검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의원들의 출장비는 세금으로 충당되지만 지출 내역은 공개되지 않는다. 국회는 내년 예산에 의원공무수행출장비 3억원, 의원외교활동 2억3300만원을 각각 늘렸다. 두 항목의 총 예산은 85억6400만원이다.

황인수 백봉정치문화교육연구원 박사는 “의회 외교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데, 의원들이 그런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니 외유성 출장이라는 비판만 받게 된다”며 “의회 외교라는 큰 비전에 맞춰 전문성을 갖춘 의원들 중심의 의회 외교 모범 사례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윤성민 신재희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