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학도 악용’ 졸피뎀 마구잡이 유통…“성범죄 약물 1위”

입력 2017-12-17 13:21

마약류인데도 처방없이 인터넷서 버젓이 거래
이영학 범행 도구…불면증치료 외 악용 다반사
식약처, 의약품 불법사이트 적발 한해 2만여건
수사권 없이 모니터링만…불법 유통 근절 한계
“비급여 향정신성 약물 처방, 심평원 보고해야”

마약성분이 포함된 수면제와 자연유산 유도제 등이 인터넷 공간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이들 의약품은 대부분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거나 아예 국내에선 판매가 불법인 제품들도 있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17일 병원이라는 이름을 내건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졸피뎀(수면제)과 미프진(낙태약), 사후피임약 등을 팔고 있다. 이 중 불면증 치료에 널리 쓰이는 졸피뎀은 향정신성 의약품, 즉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돼 엄격하게 관리되는 약품이다. 여타 수면제보다 약효가 3배 정도 강하고 잠에서 깬 뒤 전날 있었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등의 부작용도 나타난다.

이 때문에 딸의 친구인 여중생을 납치해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35)이 범행에 사용하는 등 각종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2006~2012년 사이 진정제 성분 약물로 성범죄를 저지른 148건 중에서 졸피뎀이 31건으로 약 5분의 1을 차지해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이 사이트에서는 1:1 상담서비스 창을 통해 입금정보를 문의한 뒤 무통장 입금으로 결제만 하면 원하는 약을 손에 쥘 수 있다. 가격은 12정 기준 22만원, 24정은 45만원선에서 형성돼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졸피뎀으로 검색해 나온 또 다른 업체는 "졸피뎀을 처방전 없이 판매한다"며 광고했다. 이 업체에서는 수면제는 물론 여성흥분제와 '물뽕'이라 불리는 마약류까지 취급하고 있다. 불순한 의도가 있다면 성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충분한 약물들이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도 졸피뎀을 거래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판매자는 졸피뎀을 구하고 싶다는 글에 “예전에는 병원 처방을 받고 구매했지만 지금은 인터넷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처방된 약과) 다른 점은 없다”며 링크나 메신저 아이디(ID)를 남기기도 했다.


의약품 불법 사이트가 적발된 것은 최근 4년간 8만5000여건이나 된다. 해가 갈수록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실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이트 적발 건수는 ▲2013년 1만8665건 ▲2014년 1만9649건 ▲2015년 2만2443건 ▲2016년 2만4928건으로 집계됐다.

식약처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불법 판매 사이트를 적발하고는 있지만 수사권 없이 불법 유통 행태를 근절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식약처 관계자는 “약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식약처가 모니터링을 담당하고 있다”며 “사이트 차단은 방통심의위에서, 수사는 검찰과 경찰이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식약처가 불법사이트에 대해 단순히 차단·삭제 요청을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며 “자체적인 단속 체계를 구축하고 적극적으로 검찰 등에 고발·수사 의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마약류인 졸피뎀에 대한 관리가 부실한 점도 불법 유통을 부추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서울대학교병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졸피뎀 10㎎을 처방받은 환자 8027명 중에서 중복처방일수가 7일을 초과하는 환자는 3255명(40.5%)에 달했다. 중복처방으로 잉여분, 즉 남는 약이 생기면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서 불법 유통될 여지가 커진다.

약을 취급하는 병원 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지하시장 형성에 한 몫 한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3단독 최석진 판사는 지난 10월30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간호조무사 A(32)씨에 대해 벌금 800만원에 추징금 187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17차례에 걸쳐 졸피뎀과 로라제팜을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문가들은 비급여 향정신성 약물의 처방기록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의무보고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약류 관리의 허점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진단한다. 비급여 처방일 경우에도 의료진이 심평원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에 입력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아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정책사무국장은 “비급여는 건강보험 혜택이 없어 심평원에서 받는 돈이 없다보니 처방시 심평원에 알릴 의무가 없다”며 “단순히 돈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 향정신성 등 위험의 소지가 있는 약물은 심평원에 내역을 반드시 보고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