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김정은 신년사’… “핵 완성 선언+경제 위한 협상” 가능성

입력 2017-12-17 09:55

북한은 매년 1월 1일 최고통치자의 신년사를 발표한다. 북한은 ‘당과 국가의 수반이 새해를 맞이하여 하는 공식적인 연설문’이라고 신년사를 정의하고 있다. 새해 국정과제를 포함한 국정운영 청사진을 대내외에 밝히는 자리다. 김정일은 신문 지면을 통해 이를 활자로 발표했으나 김정은은 영상과 육성으로 한다.

노동당 간부부터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민이 의무적으로 이를 시청하거나 청취해야 한다. 신년사는 북한 주민에 대한 통치수단이기도 하다. 중앙기관을 비롯한 각 시·도 단체 및 농장·기업소별로 신년사 관철 결의모임과 궐기대회를 1월 한 달 동안 진행한다. 신년사는 최고지도자가 당·정·군·민 모두에게 직접 부과하는 과업인 셈이다.

신년사는 내각 등 각 기관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당 선전선동부와 조직지도부의 검증을 거치고 서기실(비서실)이 작성해 김정은에게 보고된다. 최종적으로 김정은의 결재를 거쳐 확정된다. 지금 한창 이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터이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리고 3차례 ICBM을 발사하며 화성-15형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며 핵무력 완성을 언급했다. 내년 1월 1일 발표될 신년사에서는 ‘핵무력 완성’ 선언과 함께 그 이후의 방향을 공개할 가능성이 크다.

◇ 핵·경제병진노선 5년 만에… “핵무력 완성”


김정은은 최근 혹한을 무릅쓰고 백두산에 올랐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최룡해 당 부위원장 등과 함께 백두산 장군봉(해발 2750m)에 올랐다고 지난 9일 보도했다. 신문은 “(김정은이) 장군봉 마루에 서시어 백두의 신념과 의지로 순간도 굴함 없이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빛나게 실현해 오신 격동의 나날들을 감회 깊이 회억(회고)하셨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2013년부터 해마다 백두산을 찾았다. 2013년 11월 백두산에 다녀온 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고, 2014년 11월 백두산을 찾은 뒤에 나온 이듬해 신년사에선 “최고위급 회담을 못 할 이유가 없다”며 남북 정상회담을 깜짝 제의하기도 했다. 북한이 ‘빨치산 성지’로 선전하는 백두산을 다녀올 때마다 중대한 변화나 발표를 내놓곤 했다.

이번 신년사에도 같은 패턴이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최근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핵무력 완성은 공식 선언하고 핵·경제병진노선의 다음 5년 전략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도 ‘한반도 정세-2017년 평가 및 2018년 전망’에서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제시한 목표를 완수했다는 대내적 정치선언 차원에서 내년 신년사를 통해 핵무력 완성을 말할 것”이라고 봤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이뤄지는 핵무력 완성의 선언은 서두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야 할 이유는 내년 3월이라는 시점에 있다. 내년 3월이면 김정은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천명한 지 5년이 된다. 자신의 통치 방향이 옳았음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줘야 할 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 ‘핵·경제 병진’에서 ‘경제’는?… ’대화 공세’ 가능성


김정은이 내세운 두 가지 핵과 경제 중 민생과 직결된 경제 분야에선 지난 5년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평양에 토목사업을 벌여 신시가지를 새로 조성한 것 정도가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경제 요소인 장마당은 국가 통제를 벗어나 급속히 확산됐고, 그 장마당 경기를 좌우하는 중국과의 무역은 국제사회 제재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북한의 석탄 섬유 등 1~3위 수출품은 모두 제재 대상에 올라 있다.

김정은은 주민들에게 경제 분야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핵이 완성되면 잘 살게 될 것”이란 생각으로 고통을 감내해온 북한 주민들은 “핵무력 완성” 선언에 ‘경제적 기대’를 품을 게 분명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방편으로 김정은이 ‘대화 공세’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극동문제연구소는 “김정은이 2018년 신년사를 통해 핵보유국으로서 지위 인정과 핵·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를 선언하고 대미협상을 비롯한 대화 제의 등 평화공세를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핵’을 ‘돈’과 연결시키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리라는 것이다.

신년사에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는 동시에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시험 등의 중단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미국에 전격적인 협상 제안을 하는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핵 동결’을 대가로 평화협정, 북미 수교, 대규모 경제 지원 등을 요구하는 방안이다. 미국이 거부할 경우 이를 명분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플랜B'도 가능하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