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권역외상센터의 참혹한 현실을 폭로했다. 1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권역외상센터의 민낯이 드러났다.
지난달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의 수술을 집도한 이국종 교수와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거웠다. 이국종 교수는 북한병사 수술에 대한 브리핑 중 권역외상센터의 처절한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청와대에서는 국민청원이 진행됐고 권역외상센터의 예산을 삭감을 계획했던 정부는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이국종 교수는 이런 관심에 “정치권에서 응답해 예산을 200억이나 늘려줬지만 정말 좌절스럽다. 마치 2011년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뜻밖의 반응이었다. 그는 “이런 관심과 응답이 처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아덴만 작전 중 총상을 당한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이국종 교수는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당시에도 권역외상센터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고 정치권의 지원을 약속받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이날 방송에서는 이국종 교수의 비망록도 공개했다. 101장짜리 그의 비망록엔 권역외상센터 안에서 일어나는 숱한 좌절과 절망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밤은 환자들의 비명으로 울렸다. 그들은 죽음을 달고 내게로 와 피를 쏟았다. 으스러진 뼈와 짓이겨진 살들 사이에서 생은 스러져갔다. 내게 오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늘 긴박했고 산다해도 많은 경우 장애가 남고 후유증의 위험이 도사렸다. 승리가 담보되지 않는 싸움이다.”
“어쩌면 병원은 이런 과 하나쯤 상징적으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것이 병원의 살아남는 방도 중 하나였는지도 몰랐다. 내게 맡겨진 보직은 외상외과 자리였고 그것이 내 밥벌이였다. 난 죽지 않아도 될 이들이 살아나가는 법을 알고 있었으나 제대로 정착시킬 수 없는 나의 업에 스스로 부끄러웠다.”
“관료나 정치인들은 1년이 멀다 하고 현재 자리에서 떠나거나 보직이 변경되기 마련이고 각종 학회나 개별기관들도 철저히 자신의 입장에서 움직인다. 먼 앞날을 내다본다고 하는 것은 그저 그렇게 하는 척 할 뿐이다. 다 자기 자리에서 먹고 살자고 할 뿐 진정성은 없다. 그래서 보건의료 정책은 여태껏 헛돌았고 앞으로도 계속 헛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권역외상센터는 20명의 전담 의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준을 충족하는 권역외상센터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또한 일부 권역외상센터에서는 외상환자를 보는 조건으로 국가 지원비를 받고 있는 외상센터 전문의가 일반 환자를 보고 있었다.
한 제보자는 “외상센터는 국고지원이 되니까 외상센터 인원을 응급의학과처럼 같이 돌렸다. 이를 거부하는 전문의를 계약 해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목포 한국병원 류재광 원장(전남 권역외상센터)은 “처음 규정은 외상 전담의는 외상만 보는 것이었는데 헌법소원감이다. 몇 명 되지 않는 중증외상환자를 보려고 대기하는 것도 문제다. 남은 시간에 환자들을 본거다. 그 자체를 잘못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고 주장했다.
과거 권역외상센터에서 근무했던 한 간호사의 증언도 이어졌다. 그는 “권역외상센터에서 일하면서 세 번의 유산을 겪었다”라고 퇴사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처음 유산 했을 때 다들 ‘나도 유산 했었어’라고 말하니 슬퍼할 여력도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제작진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138명의 권역외상센터 의료진들의 실태 조사 및 221명의 전국 외과 대학생의 전공 분야 선호도 전수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지난 한 달 동안 권역외상센터에서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근무했다는 의료진이 60.9%에 달했다. 한 달 중 야간 근무를 한 횟수는 ‘7일~10일’이 42%로 가장 많았다. 또한 전국 의과 대학생들의 88.7%가 ‘외상 외과를 선택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에 최근 보건복지부는 전문 의료인력의 인건비를 늘리고 닥터헬기를 늘리고 의료수가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국종 교수는 “권역외상센터와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맞지 않다. 괴리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우리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가망이 없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