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견고했던 방어막은 세 번에 걸친 검찰의 공격에 허물어졌다. 1년여 전 자신의 비위 의혹을 감찰하던 이석수 당시 특별감찰관의 뒤를 캐려 국가정보원 조직을 동원했던 게 자기 발등을 찍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국정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지각변동이 없었다면 ‘천하의 우병우’가 구속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촌평했다.
15일 새벽 서울구치소 관계자가 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을 내밀자 우 전 수석은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우 전 수석은 전날 구속 전 피의자심문이 끝난 뒤 서울구치소에 인치돼 영장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내 덤덤하게 영장 집행을 받아들였다. 황토색 수의로 갈아있고 입소 절차를 마친 뒤 신입 수용자들에게 지급되는 생활물품을 받아들고 6.56㎡(약 1.9평) 독방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거듭 생환했던 박근혜정부 실력자의 추락 장면이다.
어릴 때 ‘영주(경북) 천재’로 불렸던 우 전 수석은 서울대 법대 3학년이던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만 20세 최연소 합격이었다. 3년 후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줄곧 동기 중 선두권에 속하는 ‘엘리트 검사’였다. 대검찰청 중수1과장일 때인 2009년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중수부 1120호 특별조사실에서 직접 조사한 이력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변호인 자격으로 동석해 상황을 지켜봤다.
우 전 수석은 노 전 대통령 서거 후에도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수사기획관 등 요직을 맡았다. 하지만 검사장 승진에서 밀려나자 2013년 5월 검찰을 떠났다. 이명박정부에서 ‘노무현 수사 검사’란 딱지가 붙은 그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키긴 부담이 됐을 거란 말이 나왔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정부에서 권력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에 발탁됐다가 8개월 만에 민정수석에 올랐다. 우 전 수석 장모와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수차례 함께 골프를 쳤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그의 고속 승진 배경으로 최씨가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은 여전히 “최씨를 모른다”고 한다.
우 전 수석은 청와대 ‘왕실장’이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2015년 2월 퇴임한 뒤 그 역할을 대신했다. ‘리틀 김기춘’이란 별칭도 붙었다.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등 사정기관을 총괄했다. 친정인 검찰의 일부 간부들과 종종 저녁 술자리를 갖고 수사 현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모임을 ‘우병우 사단’이란 말의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
지난해 우 전 수석 처가의 서울 강남 땅 매매 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특별감찰관실이 7월부터 그의 의경 아들 보직 특혜 의혹, 가족 회사 ㈜정강의 횡령 의혹 등에 대한 감찰에 들어간 뒤에도 우 전 수석의 위세는 꺾이지 않았다. 이 전 감찰관에게 직접 감찰 중단을 압박하는 한편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을 시켜 이 전 감찰관 동향을 수집했다.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청와대를 나온 뒤인 지난해 11월 6일 검찰에 처음 소환됐다. 조사 성과는 없었다. 검찰 조사실에서 팔짱을 낀 채 웃는 모습이 사진으로 공개되면서 ‘황제 조사’란 논란만 남겼다. 당시 수사팀 내부에서는 “다 끝났다. 어떤 결과를 내놓든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란 한탄이 흘러나왔다.
이때를 포함해 우 전 수석은 다섯 번 검찰과 특별검사팀에 소환됐고, 세 번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두 번째 구속영장 기각 후 불구속 기소로 끝날 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정권이 바뀌고 국정원 자체 조사가 진행되면서 전기가 마련됐다. 본인 입에서 “이게 제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압박 강도가 높았다. 결국 3차 구속영장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혐의가 소명된다”며 발부란에 도장을 찍었다. 권 부장판사는 “특별감찰관 사찰 관련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콕 집어 명시했다. 우 전 수석을 처음 감찰했던 이 전 감찰관이 결국 우 전 수석 구속 판단에도 결정적 고려 대상이 된 것이다.
우 전 수석은 스스로 “존경한다”고 몇 차례 밝혔던 박 전 대통령이 갇힌 특별수용실 옆 사동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이 구치소 내에서 마주칠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글=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