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칫거리 된 노인 손님들… 日 ‘노인 갑질’의 이면?

입력 2017-12-15 15:43
사진=뉴스포스트세븐 웹사이트 캡처

로맹 가리의 책 ‘자기 앞의 생’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프랑스와 같이 크고 아름다운 나라에서는 노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노인들은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는데, 노인들은 더 이상 일도 할 수 없고 남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으므로 그저 방치해둔다는 것이다.”

노인이라는 단어는 ‘사회문제’라거나 ‘골칫거리’ ‘성가신’ 등 대개는 부정적인 단어와 함께 하곤 했다. 최근 들어서는 이들에게 ‘갑질’까지 연결되고 있다. 매장의 점원들에게 큰소리를 치거나 불합리한 요구 등을 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극심한 고령화를 겪고 있는 일본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일본에선 노인들의 ‘카스하라(カスハラ)’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카스하라란 손님을 뜻하는 영어 ‘customer’와 괴롭힘을 뜻하는 ‘harassment’의 합성어로, 한국으로 치면 ‘손님 갑질’이다.

일본 매체 ‘뉴스포스트세븐’은 13일 노인들의 카스하라를 다루면서 그 이면에는 젊은 세대와의 거리감, 디지털 기기 같은 새로운 것의 적응 문제 등이 있다고 전했다.

스마트폰 상점은 노인들이 젊은 직원들을 심하게 다그치는 일이 벌어지는 곳 중 하나다. 디지털 기기에 생소한 노인 세대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세대는 생각의 출발점이 다르므로 대화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잦다.

과거 한 회사의 임원 출신인 A(72)씨는 “스마트폰 조작을 잘 모르거나 기계 상태가 나쁘다싶을 때 가게에 상담을 간다. 하지만 20대 점원들은 항상 귀찮은 듯 ‘주소록 백업했냐?’ ‘업로드 사이트 URL을 클릭하면…’ 등을 문자로 보내면서 빠른 말로 지껄인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천천히 설명해달라고 말을 자르면 노골적으로 귀찮은 듯한 얼굴을 한다”며 “그러면 이쪽도 점차 기분이 안 좋고 거칠게 된다”고 말했다.

공무원 출신인 70세 남성 B씨도 비슷한 생각을 전했다. 그는 “손녀 스마트폰을 사러 갔는데 가족할인 대상이니 서류를 가져오라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갖고 오면 이번에는 다른 서류를 가져오라 해서 다시 집으로 갔다”며 “그때마다 긴 시간을 허비해서 무심코 ‘처음부터 정리해서 말해!’라고 고함을 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자 점원은 겁에 질린 것처럼 뒤로 빠지고 대신 점장이 왔다”며 “완전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고 말했다.

젊은 아르바이트 점원이 많고 서비스가 다양한 편의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기 쉬운 공간이다. C(68)씨는 인근 편의점 점원의 대응에 언짢은 적이 있다. 그는 점심 도시락을 사려고 편의점에 들렀다. 점원은 포인트 카드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없다고 답했다. 그는 도시락을 사고 편의점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차에 담배를 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와 담배를 샀다. 그런데 그 점원은 다시 그에게 “카드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1시간 정도 후에 그가 다시 커피를 사려고 편의점을 들렀을 때도 그 점원이 “카드 있으세요?”라고 묻자 그는 “없다고 했잖아!”라고 큰 소리를 냈다. 그는 “아무리 매뉴얼이 있다고 하지만 정도가 있지, 단골 얼굴을 기억할 생각도 없는지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카스하라로 비춰지는 것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회사원 D(64)씨는 “물수건을 테이블에 내던지듯 놓아 ‘무례하다’고 소리치면 ‘다른 고객이 있으니 조용하라’는 소리를 들었다”며 “성가신 손님 취급을 당했다”고 말했다.

환자가 불안해지기 쉬운 병원에서도 노인들의 카스하라가 종종 일어난다. E(73)씨는 소화 장애로 입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까지 중병을 앓은 적이 없던 터라 불안하고 초조해 간호사를 만날 때마다 “식욕이 없는데 괜찮냐?” “이 약에 부작용은 없냐?” “더 악화되진 않냐?” 등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었다.

하루는 병실에서 혼자 자고 있다가 불안이 심해져 한밤중에 몇 번이나 간호사를 호출했다. 간호사는 처음에는 즉시 달려왔지만, 점차 간호사의 반응이 안 좋아지자 그는 “빨리 좀 와!”라고 소리를 치고 말았다. 그는 “그 후로 간호사가 쌀쌀 맞게 대했다. 분명 불쾌한 할아범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마음이 불편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