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4일 항소심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 참모진들을 향해 서운함을 토로했다.
서울고법 형사 3부(조영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 속행 공판에서 김 전 실장은 “한마음 한뜻으로 나름 국가에 충성한다고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와서 하기 싫은 일을 내가 억지로 강제했다는 부분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보조금 사업전수조사, 좌파에 대한 배제 성과를 내지 않아 김 실장으로부터 질책받았다”는 모철민 전 교육문화수석의 진술에 “수석들을 꾸지람하지 않았다. 수석들도 위법한 일이라며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날 김 전 실장은 1심과 마찬가지로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와 단체에 대한 지원배제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정부적 사람을 어떻게 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면서 “다만 좌파라는 용어는 반국가 반체제적이었다는 의미였고, 대한민국 정체성이나 국가안보, 자유민주주의,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문화예술인이나 단체에 대한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2014년 3월 비서실장 주재 수석 비서관 회의 문건에 기재된 ‘시스템 구축’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블랙리스트 시스템 그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보조금 지원배제 업무는 한정적인 예산을 집행하는 데 따른 정당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김 전 실장은 “100명분의 예산이 있으면 신청자가 200명, 300명”이라며 “불법시위를 주도하거나 문서의 요건을 안 갖춘 신청자를 빼고, 위원들이 평가해 작품성이 떨어지면 제외하는 방식으로 100명을 지원한다. 그런데 어떻게 명단을 청와대에 보내 가부를 받는 절차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교체 의혹에 대해서는 “세월호 사태로 민심 수습 차원에서 개각을 단행할 때 그중 한 사람으로서 교체된 것일 뿐, 블랙리스트 적용에 소극적이라 교체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