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흘렀다. 2007년 12월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로 오염됐던 충남 태안 앞바다 생태계가 원상회복됐다. 사고 직후 태안지역 전체 해안의 69.2%에 달했던 ‘심각’ 수준의 잔존 유징이 0%로 바뀌었다. 상흔을 딛고 일어선 태안은 이름 그대로 ‘크게 편안한’ 힐링의 고장이 됐다.
태안은 아름다운 곳이 무궁무진하다. 먼저 신두리 해안 사구를 찾아가 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해안사구(砂丘)다. 해안과 사막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가 사람을 이끈다. 길이 3.4㎞에 폭 0.5∼1.3㎞ 안팎이다. 약 264만㎡의 방대한 규모로 약 1만5000년 동안 만들어졌다. 오롯한 모래언덕이 있는가 하면 이름 모를 풀이나 억새로 뒤덮인 언덕, 순비기나무 같은 관목 등 다양한 모양과 식생을 가진 구릉이 펼쳐져 있다.
모래언덕을 둘러본 뒤 곰솔생태 숲을 지나 작은 별똥재와 억새골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게 좋다. 사막처럼 넓은 모래벌판에 들어서면 해안 사구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생태계가 이어진다.
멀리 바다를 숨겨둔 모래언덕은 고대의 방벽처럼 보인다. 사구 표면에는 얕은 물결 모양의 바람자국이 선명하다. 모래언덕을 지나 울창한 곰솔 숲으로 들어서면 다른 모습의 사구를 볼 수 있다. 길은 나무데크가 없는 흙길이어서 더욱 운치 있다. 석양에 비친 억새는 장관을 이룬다. 넓은 억새밭 아래로 바닷물이 들어온다. 한 폭의 그림 같다. 작은 별똥재와 억새골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억새골은 영화 ‘마더’에서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도준의 어머니가 덩실덩실 춤을 추던 그 억새밭이다.
신두리사구에서 소원길이 이어진다. 만리포해변까지 총 22㎞다. 태안 해변길 중 최고의 풍광을 자랑한다. 소원길에는 숨겨진 보물처럼 신비로운 태배길이 연결돼 있다. 소원면 의항2리 일원에 위치한 ‘태배길’은 2007년 기름유출 사고 극복과정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방제로로 활용되다 명품 생태탐방로가 된 태안의 대표적인 길이다. 구름이 뭉실뭉실 떠 있는 듯한 구름포 해변도 만날 수 있다. 소나무 숲길과 한적하고 조용한 해변도 지난다. 굽이굽이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경관과 독특한 해안생태계를 내세운다.
폐기된 군막사를 개조해 만들어진 태배전망대는 의항리와 원북면 신두리 사이의 넓은 만(灣)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 포인트. 광활한 서해와 칠뱅이섬(일곱개의 섬) 등 아기자기한 섬들, 불같이 타오르는 황홀한 낙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멀리 신두리 해변과 사구도 시야에 들어온다. 3시간 정도의 짧은 트레킹이 가져다주는 넉넉한 풍경이 백미다. 시선(詩仙) 이태백이 절경이라고 극찬할 정도다.
태배길 중간 해변에 ‘독살’ 체험장이 있다. 독살은 해안에 돌을 쌓고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나가지 못하게 해 잡는 전통 고기잡이다.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 받은 천리포 수목원도 볼거리다. 태안반도 끝자락 소원면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은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불렸던 고(故) 민병갈 설립자가 40여년 동안 정성을 쏟아 일궈낸 우리나라 1세대 수목원이다. 중부지역이면서도 남부식물이 월동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간직하고 있어 1만5800여 종류의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수목원 내 밀러가든은 바다와 인접해 있어 사계절 푸른빛을 머금은 곰솔 사이로 탁 트인 서해를 볼 수 있다. 수목원 산책과 동시에 청량한 파도와 고운 모래가 펼쳐진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수목원 내 노을쉼터나 바람의 언덕은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수목원 앞 바다엔 닭섬이 보인다.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해무가 주변을 삼켜버리면 방파제 앞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고 아름답다. 천리포는 만리포로 이어진다. 태안 팔경 중 제4경이며 돔형의 아름다운 백사장이 만리포 해변이다. 수심이 깊지 않아 일년 내내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서해안 3대 해변이다. ‘만리포 사랑’이라는 반야월 선생의 노래비가 있다.
눈 덮인 산봉우리가 하얀 천을 씌운 듯해서 이름 붙여진 백화산은 높이 284m로 작고 아담하지만 서해 바다를 끼고 있는 풍경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전망대 서면 시야가 트여 있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몰은 최고의 경관이다.
태안에는 겨울 먹거리도 풍부하다. 박속밀국낙지탕은 태안의 겨울별미다. 통째로 넣은 낙지와 박이 어우러진 시원한 육수에 칼국수, 수제비를 넣어 먹는 맛이 독특하다.
태안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 또 있다. 바로 게국지다. 충청 지역 토속음식으로 서해안 특산품인 게와 겉절이 김치를 함께 끓여내는 찌개다. 찌개나 탕보다는 담백하고, 국보다는 맛이 진한 것이 특징이다.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먹거리다.
물텀뱅이탕도 빼놓을 수 없다. 물메기를 태안에서는 물텀뱅이라 부른다. 항구나 시장 어디서나 싼값으로 쉽게 만날 수 있는 겨울 영양식이다.
비타민, 무기질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해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굴도 제철을 맞았다. 태안 어느 곳에서나 싱싱한 굴을 맛볼 수 있다. 담백한 생굴과 매콤한 물회, 무침회로 먹는다.
간자미는 회, 무침, 찜 등 여러 가지로 즐길 수 있다. 특히 갓 잡은 간자미를 즉석에서 잘게 썰어 미나리, 오이 등과 함께 고추장에 무쳐 먹는 간자미 회무침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자연산 우럭포를 먹기 좋게 잘라 파, 고추 등과 푹 끓여 완성한 우럭젓국은 담백하고 구수한 태안의 맛을 대표한다.
여행메모
읍내에서 학암포 방면 신두리
서해안 해돋이 명소 연포해변
수도권에서 충남 태안으로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 서산나들목에서 빠지는 게 좋다. 32번 국도를 타고 서산을 지나면 태안읍에 닿는다.
태안읍에서 603번 지방도를 타고 원북면으로 가다 반계교차로에서 좌회전해 학암포 방면으로 진행하면 왼쪽으로 신두리 이정표가 있다. 신두리 사구는 진입 방향에서 가장 끝, 신두리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사구 초입에 사구 센터가 있다. 입장료는 무료다.
태안은 서해안에서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근흥면의 연포해변과 안면읍의 안면암이 대표적인 명소다. 동해처럼 장엄한 모습은 덜 하지만 바다와 갯벌을 물들이는 모습이 황홀하다. 연포 앞 바다 솔섬 뒤로 떠오르는 해가 인상적이다.
태안 읍내 바다꽃게장(041-674-5197)은 꽃게찜과 꽃게장으로, 태안등기소 앞 토담집(041-674-4561)은 우럭젓국으로 이름났다. 박속밀국낙지탕은 원북면 소재지에 있는 원풍식당(041-672-5057)이 유명하다.
태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