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천태산, 암벽 타고 오른다,짜릿한 긴장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입력 2017-12-14 07:58 수정 2017-12-25 19:27
충북 영동과 충남 금산에 걸쳐 있는 천태산을 찾은 등산객이 로프를 잡고 암릉을 오르고 있다. 천태산은 크게 높지 않지만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충북 영동과 충남 금산에 걸쳐 있는 천태산(天台山·714.7m)은 스릴을 맛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산이다. 산의 덩치는 작지만 기암괴석과 분재 같은 소나무가 어우러져 설악산 공룡능선에 견줄 만해 ‘충북의 설악산’으로 불린다. 산 아래서 올려다보면 다소 실망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속으로 들어가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산행 내내 제 모양을 자랑하는 바위가 많은 데다 직각에 가깝게 버티고 선 75m짜리 암벽을 로프에 의지해 타고 오르는 구간이 짜릿한 긴장감과 성취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초보자나 어린아이와 함께 오르기는 힘든 암릉산행 코스이다.

천태산은 A코스로 올라 D코스로 내려오는 등산로가 애용된다. 암벽을 오르는 맛과 조망, 문화유적이 이 코스에 잘 배치돼 있다. 출발은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천태산 주차장이다. 삼단폭포→A코스→정상→D코스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총 거리 6.8㎞로 4∼5시간 걸린다. 곳곳에 암벽을 포함한 난구간이 많아 체력 소모가 적지 않다.

삼단폭포를 지나면 천연기념물 223호로 지정된 명품 노거수인 은행나무가 전설처럼 서 있다. 높이 31m에 수령 1000년을 훌쩍 넘겼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산 은행나무보다 키는 작지만 겉모습에서 오랜 세월을 버텨온 기개가 느껴진다.

은행나무 우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A코스 등산로 입구를 만난다. ‘A코스 입구, 정상 1370m’. 안내판이 친절하다. 능선 구간에 올라서면 솔향이 싱그러운 송림이 이어진다. 된비알을 오르면 곧이어 기운찬 암릉이 위용을 드러낸다. 천태산 암벽의 시작이다. 암벽마다 로프가 이중으로 설치돼 있다.

첫 번째 10m 암벽은 가벼운 워밍업 수준. 곧이어 25m 암벽이 막아선다. 로프를 단단히 잡고 나무 둥치나 바위의 움푹한 곳을 디디며 암벽을 타고 오른다. 그럭저럭 넘었다 싶은 순간 75m 암벽이 고층 빌딩처럼 앞을 막아선다. 천태산 암릉의 하이라이트다. 경사도가 70도라지만 밑에서 올려다보면 직벽에 가깝다. 국내 산행코스 에서 일반인들에게 등반이 허용된 코스 가운데 가장 길고 어려운 코스 중 하나일 듯하다.

암릉은 출발 직후 약 20m까지가 특히 가파르고 까다롭다. 굵은 밧줄에 쇠줄이 함께 엮여있어 끊어질 염려는 없고, 밧줄 중간 중간엔 잡기 좋게 매듭도 지어져 있다. 하지만 만약 도중에 미끄러져 밧줄이라도 놓친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암벽 우측으로 노약자나 초보자들이 비켜갈 수 있는 안전 우회로가 있다. 잠시 헤어졌던 두 길은 다시 만난다.

천태산 정상석.

자연이 선사하는 기막힌 스릴을 놓치고 싶지 않아 정면도전에 나선다. 로프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대롱대롱 매달려 발 디딜 곳을 찾아 힘껏 로프를 당기니 몸은 중력을 거스르며 오른다. 긴장감에 손에 땀이 차고 머리끝이 쭈뼛 선다. 온몸 세포가 찌릿하다. 차분히 한발 한발 옮기면 드디어 암벽 위에 올라선다. 뒤돌아보니 소나무 사이에 힘겹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 너머로 파노라마처럼 산줄기가 이어진다. 한 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다. 노고에 따른 보상이 결코 작지 않다.

또다시 올망졸망한 암벽과 로프가 매달린 비탈을 오르고 정상 앞 681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다. 삼각점과 멋진 정상석이 쾌감을 선사해준다. 멀리 서쪽으로 서대산, 남쪽으로 상주산과 그 너머로 덕유산, 계룡산, 속리산이 아련히 펼쳐져 있다.

681봉까지 되짚어 내려와 D코스로 내려선다. 오를 때와는 달리 아주 편안한 길이다. 헬기장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C코스는 2005년 산불 이후 폐쇄돼 있다. ‘조망석’이라 표시된 바위에 올라서서 풍경을 조망한다. 멀리 충남 금산군 제원면의 산자락이 보인다.

내려가는 길의 조망도 그림의 연속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날등을 따라 이어지는 기기묘묘한 바위와 벼랑 끝에 매달린 소나무가 화폭을 갈아 끼운다. 전망바위에 서면 충청의 산들이 중중첩첩 포개져 있다. 말잔등 같은 바위능선도 감탄사를 불러낸다. 산길을 조금 내려오니 남고개다. 편안한 산책로 같은 하산길이 이어진다.

영동=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