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뜨거운 진심으로 되살아난 그날의 처절한 열망

입력 2017-12-13 19:40
영화 ‘1987’의 극 중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30년 전 그날의 처절했던 외침이 뜨거운 울림으로 되살아났다.

민주주의에의 열망으로 타올랐던 1987년을 전면으로 다룬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이 13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이 이야기만큼은 꼭 해야겠다’는 열망과 뼈아픈 역사를 다루는 진정어린 태도가 러닝타임 130분 동안 꽉 들어차있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영화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그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 6월항쟁으로 폭발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고(故)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대공분실의 차가운 물속에서 사망한 그해 1월 14일부터,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독재정권 타도를 열망한 6월 10일까지의 이야기. 그 속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바를 다 한 ‘사람’들이 있었다.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여진구)이 조사 도중 사망하자 경찰은 곧바로 증거 인멸을 시도한다. 대공수사처 박처장(김윤석)의 주도 하에 시신을 화장하기로 한다. 하지만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서울지검 최검사(하정우)가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인다. 경찰은 ‘심장마비로 인한 쇼크사’라는 거짓발표를 하는데, 이때 그 유명한 궤변이 나온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진실은 그러나 도무지 감춰지지 않는다. 부검의는 의사로서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사명감에 불타는 기자(이희준)는 팩트를 보도하고, 사건에 연루됐던 대공형사(박희순)은 뒤늦게나마 사건의 진상을 이야기하고, 교도관(유해진)은 진실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고, 이 무모해 보이는 선택들을 지켜보던 평범한 대학생(김태리)은 서서히 그 흐름에 동화된다.


영화는 시종 육중한 무게감을 유지하면서 단 한순간도 본연의 목적의식을 잃지 않는다. 답답하고 애통하다 벅차오르더니 끝내 뭉클하게. 배우들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매 순간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하게 해준다. 광화문광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마지막 대규모 시위 장면에서는 온몸이 쩌릿쩌릿한 전율까지 느끼게 된다.

시사회 이후 진행된 간담회에서 장준환 감독은 “1987년에 용감히 양심의 소리를 내고 길거리에 나와 싸우고 땀 흘리고 피 흘렸던 그분들을 생각하면서 만든 영화”라며 “상업영화의 틀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정성이 담긴 상품’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흥행보다 중요한 건 작품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공을 들이느냐였다”고 말했다.

“온 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해낸 그해.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기까지 그 밑에선 계속해서 열이 가해지고 있었죠. 언젠가는 끓어오를 그날을 위해. 그 가치와 의미와 그때의 우리가 얼마나 순수하고 뜨거웠던가.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그해’를 담고 싶었습니다.”(장준환 감독)

장 감독은 30년 전 그때의 이야기가 촛불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 오늘날의 우리에게 남다른 공감대를 이끌어낼 것이라 자신했다.


그는 “최루탄에 맞서 구호를 외치던 1987년과 온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온 2017년 사이 그 뜨거움의 온도차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1987년과 2017년이 미묘하게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국민이 얼마나 위대한가, 얼마나 힘이 있는 국민인가 보여주는 지점이지 않나. 살면서 지치고 힘들고 절망스러울 때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서로에게 힘을 주는 것 같다”고 했다.

배우들의 헌신은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 중 하나다. 주요 배역에 포진한 주·조연뿐만 아니다. 적은 분량에도 기꺼이 특별출연해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이들이 적지 않다. 박종철 열사 역의 여진구와 도피 중인 재야인사 역의 설경구, 그리고 강동원이 함께했다.

장 감독은 “내가 설득했다기보다 배우들 스스로 참여해주셨다. 거기에는 ‘이 이야기는 만들어져야 한다. 그만한 가치와 힘이 있다’는 공감대 갖고 믿어주신 거라고 생각한다”며 “영화가 끝났을 때도 각각의 캐릭터가 기억에 남도록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얘기했다.

‘1987’이 품어내는 메시지는 결국 ‘희망’이다. 장 감독은 “우리나라, 나아가 이 지구가 어떻게 하면 좀 더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될까 점점 더 많이 고민하게 된다”며 “이 영화가 전 국민에게 따뜻한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배우들과 함께 고생한 날들이 더욱 뜻 깊을 것 같다”고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