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글에 성범죄자 낙인 2년… 대법원 “무죄” 판결

입력 2017-12-13 14:29

같은 대학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남성이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5년 12월 ‘성폭행 저지른 사회복지학과 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글이 온라인에서 확산되며 논란이 불거졌던 사건이다.

대법원 3부(재판장 이기택 대법관)는 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A씨는 2015년 10월 30일 오전 3시쯤 알고 지내던 B(여)씨가 거주하던 원룸에 찾아가 수면제를 복용해 항거불능 상태인 B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객관적 사실로 입증된 건 ‘당시 A씨가 술에 취해 B씨의 방에 들어갔고 다음 날 속옷만 입은 채로 B씨의 방에서 깨어났다’ ‘A씨가 들어온 후 B씨는 친구 C씨의 도움을 받아 C씨의 방으로 이동했다’는 것이었다. B씨는 “친구인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A씨가 불을 끄고 들어와 성폭행했다”고 주장했지만, A씨는 당시 벌어진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1심 재판부는 B씨의 신체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손상이 발견되지 않은 점, B씨가 성폭력 피해자 진료기록이나 유전자 감정 보고서 등 객관적 증거의 내용에 따라 진술을 번복한 점 등을 근거로 B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범행 당시 수면제 2알을 복용해 명확히 기억하기 어려우리란 점을 고려한다 해도 진술의 불일치를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A씨가 원룸 건물에 들어간 후 14분간 건물 앞에서 B씨의 연락을 기다렸던 친구 C씨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점도 지적했다.

2심 재판부 역시 1심 판결을 그대로 따랐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B씨의 원룸에 들어간 후 B씨는 친구 C씨와 100회 넘게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B씨 주장대로 성폭행을 당한 후 화장실로 도망가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경찰에 신고하기 전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원룸을 보존했다는 B씨가 자신은 샤워를 한 뒤 피해자 진료를 받았다는 것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사건은 2015년 12월 B씨가 소셜미디어에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는 글을 올리면서 학내 커뮤니티와 일반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됐다. 당시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A씨의 신상정보가 무분별하게 퍼져나갔다. 특히 사회복지학과생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비판이 잇따랐었다.

A씨는 “경찰 조사를 받게 된 뒤부터 누명을 벗기까지 2년 가까이 말로 다 못할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그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정액이 발견됐다’며 추궁을 당했고 변호사도 ‘정액이 발견된 이상 (범행을) 인정해야 한다’고 나를 설득하려 했다. ‘그럼 DNA 대조를 해보자’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다른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을 받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액이 발견됐다는 자료는 검사를 진행한 병원 측이 질 분비물을 정액으로 잘못 판단해 작성한 것이었고, 같은 병원 임사병리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검사에선 내 DNA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