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프로농구 정규리그 원주 DB와 서울 SK의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학생체육관. 2쿼터를 마치고 원정팀 라커에 모인 선수들에게 이상범 DB 감독은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는 우리의 플레이를 하자”고 말했다. 경기 절반을 마친 상황에서 점수는 28대 54, 홈팀인 서울 SK가 26점 차로 앞선 상황이었다.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점수차에 양 팀의 분위기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었다. “쿼터당 15점만 허용하라고 말했다. 오펜스 리바운드도 경기 내내 5개만 주라고 했다”는 문경은 SK 감독의 수비 전술이 완벽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정규리그는 54경기다. 지더라도 우리만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는 이 감독의 독려에 3쿼터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DB는 3쿼터에서만 27득점을 했고, 점수차를 26점에서 19점으로 줄였다. 1, 2쿼터에 22번 던져 5번 성공했던 3점슛은 3쿼터에만 4개가 들어갔다. 두경민이 4번 시도해 4번 성공한 것이었다.
여전히 적지 않은 점수 차였지만 3쿼터를 치른 이 감독은 경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이 감독은 “일단 3분만 밀어붙여 보자”는 생각으로 경기를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벌어진 점수차는 경기 초반 속공 허용 때문이었지, 5대 5 상황의 수비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적 우위를 가져올 수 있다는 계산도 서 있었다. 그는 경기 후 취재진에게 “만일 그때 포기했다면, 4쿼터에 김주성을 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이 고민 끝에 기용한 DB 김주성은 4쿼터에서 3점슛을 3번 던져 모두 성공시켰다. 신들린 듯한 3점슛에 원정팀의 역전극임에도 잠실학생체육관은 열기로 가득해졌다. 3점 차 상황에서 마지막 공격권을 가진 DB 디온테 버튼은 SK 애런 헤인즈의 머리 위로 3점슛을 던졌다. 공이 깨끗하게 림을 가르면서 한때 28점차까지 벌어졌던 경기는 기어이 연장으로 돌입했다.
연장전 종료 10초를 남기고 DB는 SK에 다시 2점 차로 뒤지고 있었다. 이때 이 감독이 주문한 것은 버튼과 김주성의 ‘투맨 게임’이었다. 오래 뛴 두경민은 다리에 문제가 생겨 슛을 맡길 수 없었다. 버튼이 직접 해결할 수도 있고, 인사이드의 김주성에게 패스를 투입해 2점을 넣어도 된다는 계산이었다. 4쿼터 종료 직전 동점 3점슛을 터뜨렸던 버튼은 이번에는 역전 3점슛을 시도, 성공시켰다. 그는 역전에 환호하지 않고 곧장 백코트해 헤인즈의 마지막 레이업을 블로킹했다.
연장 승리를 일궈낸 이 감독은 상기된 얼굴로 “벤치에서 선수들을 바라보며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진에게 “그것 하나는 아셔야 한다. 내가 안양 KGC 인삼공사 감독으로 우승할 때에도 3, 4쿼터에 역전하는 경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