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가까이 한국과 일본을 매주 오가야 했지만 의미있는 결과물을 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자신을 찾는 여정을 다룬 ‘페르 귄트’는 제게 특별한 작품인데, 이번에 일본에서 새롭게 공연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연출가 양정웅(49)이 일본 도쿄의 주요극장 가운데 하나인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에서 지난 8일부터 연극 ‘페르 귄트’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의 기념공연 중 하나인 ‘페르 귄트’는 일본 배우 15명과 한국 배우 5명이 출연한다. 24일까지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에서 공연된 후 30~31일 효고현립예술센터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양정웅은 “‘페르 귄트’ 연출은 이번이 3번째지만 매번 내 자신의 삶과 작품이 교차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면서 “이번엔 일본 배우들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방랑길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페르 귄트에 좀더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 프로덕션과 상당히 다른 작품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9년 LG아트센터에서 자신이 이끄는 극단 여행자와 ‘페르 귄트’를 처음 선보였다. 이 작품은 1997년 극단 창단 후 정신없이 달려왔던 그가 잠시 슬럼프에 빠졌던 상황에서 그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한층 성숙해진 연출력을 보여줬다는 평가와 함께 그에게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 등 각종 상을 안겨준 바 있다. 이 작품은 2012년 앙코르 공연된데 이어 같은 해 호주 아들레이드에서 열린 ‘오즈 아시아 페스티벌’과 2013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베세토 연극제에도 초청된 바 있다. 베세토 연극제 때 이 작품을 본 나가이 다에코 세타가야문화재단 이사장 겸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 극장장이 20주년 기념공연에 양정웅을 초청하게 됐다.
양정웅은 “3년 전 나가이 이사장님으로부터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 20주년 공연 제안을 받았을 때 ‘페르 귄트’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몇 달 동안 꾸준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끝에 ‘페르 귄트’를 다시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품이 결정된 후 극장 측에서 주인공으로 추천한 배우가 이번 공연에서 페르 귄트를 맡고 있는 우라이 겐지다. 우라이는 매력적인 몽상가 페르 귄트에 정말 어울리는 배우다”고 덧붙였다.
그는 작품과 주역이 결정된 후 거의 매달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를 방문해 작품 제작을 위한 제반사항을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그리고 일본 배우들과 함께 한국 배우들도 출연하는 형태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신체 언어를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을 무대에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한국 배우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2개국어가 사용되지만 작품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본다. 사실 극중에서도 페르 귄트가 여행하면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는가”라며 “페르 귄트를 왕따시키는 마을 사람들, 인간과 다른 존재인 트롤 무리, 페르 귄트가 방랑하면서 만나는 낯선 존재들은 주로 한국어를 사용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에 출연하는 일본 배우들은 지난해 3차례의 워크숍을 겸한 오디션을 통해 뽑혔다. 워크숍에선 배우들에게 스스로 극을 만드는 즉흥극과 신체의 유연한 움직임을 요구했다. 양정웅은 “일본 배우들이 처음엔 이런 방식에 낯설어서 어려워 했지만 익숙해진 이후엔 재밌어 한다”면서 “일본 배우들과 한국 배우들이 함께 연습하는 것을 보면 연극 ‘페르 귄트’와 마찬가지로 경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정구호의 사퇴 이후 공석이 된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연출을 맡게 됐다. ‘페르 귄트’ 공연은 이미 3년 전부터 준비해온 상황이라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에 모두 양해를 구하고 지난 두달간 매주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그는 “조직위에도 극장에도 미안할 뿐”이라며 “이제 공연의 막을 올렸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