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짱 원하십니까”… 도핑의 유혹

입력 2017-12-13 07:48

근육질 몸짱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상대로 스테로이드제 사용법을 돈 받고 알려주는 이른바 ‘아나볼릭 디자이너’들이 인터넷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의사 처방 없는 스테로이드제 복용에는 성기능 장애 등 심각한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기자는 지난 5일 직접 T인터넷카페를 통해 카페 운영자인 A씨에게 근육 성장 처방을 의뢰해 봤다. 의뢰비로 3만원을 입금했다고 SNS 메신저로 알리자 당장 “몸 사진과 인바디(체성분 분석)를 보내주면 원하는 몸으로 작업해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A씨가 요구한 대로 맨몸 사진과 체성분 분석표를 보냈다. ‘신장 172㎝’ ‘몸무게 75㎏’ ‘체지방률 16%’ 기자의 신체 조건을 분석한 A씨는 “벌크업(체중 증가 성장)은 어렵고 린매스(체중 유지 성장)가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곧 이메일로 스테로이드제의 복용 방법과 스케줄을 정리한 ‘스택’이 도착했다. 스택에는 10주 동안 여러 스테로이드제를 언제 얼마나 어떤 방법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적혀 있었다. 옥산드롤론과 클렌부테롤, 스타노졸롤 성분의 경구제와 근육으로 가는 혈류를 증가시키는 주사제 에페드린 등을 추천했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 배란유도제를 사용하라는 권고도 적혀 있었다.

A씨가 알려준 스테로이드제는 대부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분류해 의사의 처방 없이는 판매할 수 없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제였다. A씨는 이런 식으로 “스테로이드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근육성장을 극대화할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초·중·고급자용 스택을 3만∼9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사실상의 처방 행위다.

A씨 같은 이들을 아나볼릭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T카페에 “부작용 최소화하는 방법을 스스로 배웠다”며 “스택은 항상 쓰고 연구하고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실제로 T카페에는 그가 2010년부터 사용해 온 스테로이드에 관한 기록도 빼곡히 적혀 있었다.

전문가들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함부로 처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한다. 당장 부작용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 성기능 장애, 탈모, 중독성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변동원 순천향대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스테로이드는 적은 용량이라도 장기간 쓰면 면역 기능과 성 기능을 저하시키고 장기에도 해롭다”며 “의사 중에서도 내분비내과 전문의가 처방해야 하고, 의료 목적으로 쓰더라도 가능한 빨리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아나볼릭 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반인들도 손쉽게 스테로이드 정보를 주고받는다. 스테로이드로 근육 키우는 방법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불법 약품을 드러내놓고 판매하는 판매업자들, 판매업자에게 사기를 당했다거나 약물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 장소다.

A씨는 정보판매업자 사업자등록증까지 올려놓고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지만, 과거 불법 판매 행위로 처벌받은 경력이 있다. 트위터 등 SNS 계정을 검색하면 돈을 받고 스테로이드 스택을 짜준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식약처는 아나볼릭 디자이너에 관한 민원은 들어온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스테로이드 알선 행위에 관한 민원은 올해 2건이 제기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알선광고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제출돼 계류 중”이라고 말했다.

글=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