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급한 부모와 행동이 느린 아이,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은 부모와 입이 짧아 편식이 심한 아이, 개천에서 용이 난 듯 자수성가한 부모와 낙천적인 아이, 남녀 간의 궁합 만큼이나 부모 자식 간에도 성격의 궁합이 중요한다. 너무 다른 경우는 아이도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모도 육아 스트레스가 몇 배가 된다.
K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아이다. 정리 정돈을 못하고 옷매무새도 가지런하지 못해 속옷이 겉으로 삐져나오기 일쑤이다. 챙겨야 할 준비물을 늘 빠뜨리고 선생님에게 자주 야단을 맞는다. 엄마와 아침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엉뚱한 곳에 가 기다려서 길이 엇갈리는 경우도 많다.
반면 K의 엄마는 외모만 보더라도 깔끔하게 단발머리에 정갈하다. 아이의 문제를 조목조목 메모를 해와 설명하는 등 철저한 성격이다. 어려서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한 엄마는 고학을 하다시피 공부를 해서 대학을 졸업했다. 대기업에 취업해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첫 아이인 K를 낳고 아이에게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회사도 그만두고 아이에게만 정성을 기울였다. 이런 엄마에게 K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였다.
K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엄마처럼 행동이 재빠르고 야무지며 뭐든지 스스로 알아서 하는 편이었다. 엄마 마음에는 쏙 드는 아이였다. 엄마 맘속에서 K와 동생이 늘 비교 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K는 아빠를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느긋하고 세상에 급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남편과도 성격이 맞지 않아 결혼 초부터 갈등도 많았고 다투기도 많이 했다. 그런 남편은 포기하는 심정으로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K 때문에 남들에게도 창피하고 학교 선생님을 뵙기도 두렵고, 학부모 모임에도 나가기가 창피했다.
하지만 K에게는 엄마가 갖지 못한 장점이 많이 있었다. 창의성이 뛰어나 만들기 등을 하면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걸 만들어냈다. 블록을 만들 때도 매뉴얼에 있지 않은 것도 척척 만들어 친구들도 놀랠 정도여서 친구들에게 인기도 좋다. 실제로 병원에서의 놀이시간에도 게임을 할 때도 새롭게 변형한 게임을 제안하고, 피규어를 가지고 끊임없이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아이의 장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에게 보이는 단점이 K에게서 자꾸 발견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남편의 모습이 겹쳤다. 그냥 넘겨지지가 않아 심하게 야단을 치고 고치려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느꼈던 분노까지 모두 아이에게 퍼붓게 되었다. K는 지능도 높고 스마트한 아이였지만 엄마 눈에는 늘 부족한 아이였다. 이것이 아이에게 투사되어 K는 스스로를 ‘부족하고 부적절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어 모든 검사에서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위축된 아이는 사소하고 단순한 일에도 차츰 부주의해져 숙제도 잊어버리고 현실에 만족되지 않으니 멍 때리며 백일몽과 공상에 빠져들었다.
K의 엄마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성격으로 아이를 위해서도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남편과의 거리감 때문에 아이들에게 집착했다. 집착하고 있으니 아이의 장점과 단점이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단점이 확대 되어 보였다. 이를 교정하려고 억지를 부렸다. 부부 관계에서 친밀감을 회복하고 아이에게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아이가 제대로 보인다. 눈앞에 나무 바짝 불어있는 물체는 형태를 파악하기 힘들 듯 아이와의 적절한 거리가 없으면 아이를 파악하기 힘들다. 남편과 가까워져야 아이와의 간격도 생긴다.
이호분(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