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은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강원 일부지역은 최저기온이 영하 17도까지 내려가고 서울 역시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2도로 예상된다. 추운 날씨에 사람들은 두꺼운 옷, 털모자, 장갑, 목도리, 마스크 등으로 온몸을 중무장하고 나섰지만, 차갑고 강한 바람에 맞서기 쉽지 않다. 한파는 목요일인 14일 낮까지 지속되다 점차 풀려 16일에는 평년 수준으로 회복한다.
이에 비해 38년 전 오늘은 따뜻한 편에 속했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1979년 12월 12일 서울의 평균기온은 영하 0.6도, 최고기온 3.6도, 최저기온 영하 3.9도였다. 구름 한 점 찾기 힘든 맑은 날이었다. 광주는 평균기온 0.2도, 최고기온 4.9도, 최저기온 영하 4.2도였다.
하지만 정치·사회·역사의 기온은 매서운 한파를 예고했다. 이날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이 군사 반란을 일으킨 날이다. 며칠 내로 끝나지 않을 추위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암살당했다. 이후 최규하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고, 계엄 선포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돼 대통령 대행과 정국을 이끌었다.
전두환, 노태우 등 육군사관학교 11기 출신들의 군내 비밀 사조직 하나회는 당시 군부 내 요직을 차지하면서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고 있던 기존 군부세력을 위협할 만한 수준이 됐다. 하나회의 불온한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 정 총장은 주요 인사를 보직 이동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신군부는 반발하고 나섰다. 신군부는 10·26 사건 당시 정 총장이 김재규와 한패였다고 주장하면서 정 총장을 체포할 구실을 만들었고 12월 12일에 작전을 실행키로 결의했다. 이들은 1공수여단을 동원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고 정 총장을 강제 연행하는 등 군권을 장악했다. 다음 날에는 방송국과 신문사 등 언론까지 통제했다.
1980년 봄이 되면서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민주공화당과 신민당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합의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는 곧 치러질 대선을 위해 정치행보를 넓혔다. 모두가 곧 ‘봄’이 올 거라는 기대했다.
하지만 신군부 세력은 ‘사회 혼란에 따른 북괴의 남침 위기’라는 이유를 들며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게엄포고령 10호에 따라 정치활동이 전면 중단됐고, 집회 및 시위도 금지됐다. 군 병력은 국회를 점령했다.
이후 최 전 대통령은 전 사령관을 국가 원수로 추대했고, 유신헌법에 따라 선별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단독 출마한 전 사령관은 100% 득표율로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2·12 사태’는 1993년 김영삼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처벌할 수 있었다. 정 전 총장 등은 전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을 12·12 군사반란 혐의로 고소했다. 또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도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등을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5·18특별법을 제정했고, 12·12 사태와 5·18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조사가 착수됐다. 이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등은 반란수괴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재판부는 1996년 12월 16일 전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에 벌금 2205억원 추징을, 노 전 대통령에게 징역 15년, 벌금 2626억원 추징을 각각 선고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 후인 1997년 12월 22일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