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에 살고 계십니까. 국내 가구 중 5.4%인 103만 가구는 최저 주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곳에 삽니다. 이는 기계적 구분일 뿐 주거 취약계층은 훨씬 광범위합니다. 이들을 위해 다양한 주거복지 정책이 발표되지만 서민들은 “먹고살기 바쁜데 정책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피부에 와 닿지 않고 무엇이 나를 위한 정책인지 알기도 어려워 ‘주거권’을 포기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정책과 현장의 괴리를 비롯해 주거복지가 겉도는 이유를 3회에 걸쳐 짚어봅니다.
지난 7일 저녁 8시10분쯤 ‘끼익∼ 끼익∼’ 소리 나는 철제 계단을 밟고 문준현(가명·29)씨가 사는 옥상에 올라갔다. 3층짜리 주택의 꼭대기인데 더 높은 주변 건물들이 불빛을 가로막아 깜깜했다. 옥탑방 문을 열자 온기가 느껴졌다. 1시간 전에 보일러를 틀었단다. 준현씨는 “하늘과 참 가깝지요?”라고 말했다.
전북 전주에 살던 그는 2015년 10월 직장 때문에 상경했다. 고시원에 살다가 지난해 1월 보증금 300만원, 월세 37만원에 서울 수색동의 7평(약 23㎡)짜리 이 옥탑방을 구했다. 특별히 불편한 점은 모르겠다고 했다. “방문을 열면 탁 트인 옥상이 있고 빨래 말리거나 이불 털기 좋고….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그런데 한마디를 덧붙인다. “다만 돈 모을 생각은 버렸어요.”
중소기업에 다니는 준현씨는 세금 떼고 월 180만원 정도 손에 쥔다. 월세에 공과금 난방비 전기료 수도료 등을 더하면 40만원이 조금 넘는다. 월급의 약 22%를 고스란히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 갚는 데 월 20여만원이 들고 통신비 교통비 보험료까지 하면 한 달에 나가는 고정비용이 100만원을 조금 넘는다. 적금 같은 건 생각하기 어렵다. 매달 남는 돈이 생기면 통장에 쌓아두는데 잔액은 몇 달 전과 거의 비슷하다.
“주거비 빼고 남는 돈으로 생활해야 하니까 친구 두 번 만날 거 한 번 만나고, 비싼 거 먹을 거 싼 것 먹게 되더라고요. 월세 내는 돈이 제일 아까워요.”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아무도 없는 방이 외롭다고 했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한기를 피하려 보일러를 트는데 난방비가 신경 쓰여 1시간쯤 지나면 끈다. 답답할 땐 옥상에 나간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좋다고 했다. 준현씨와 함께 옥상에 서보니 주변 건물에도 대부분 옥탑방이 있었다.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사정도 준현씨와 비슷할 터였다. 멀리 수색역을 지나는 기차가 ‘빠앙∼’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RIR)은 준현씨 같은 이들의 상태를 들여다보기에 유효한 개념이다. 준현씨는 22% 정도인데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 비율이 25∼30%가 되면 주거비를 지원해 준다. 저축은 물론이고 식비 교육비 의료비 등 일상생활 전반의 수준 하락을 가져올 수 있어 ‘주거권’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산이 없고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20대는 주거비 지출이 생활수준과 직접 연결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했다. 준현씨 같은 주거 약자를 위한 정책인데 정작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은 ‘부동산 투자자’들이었다. 주택 100만 가구 공급의 시장 파급력을 분석하며 투자자들이 로드맵을 뜯어볼 때 옥탑방 청년은 “정책 발표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했다. ‘청년우대 청약통장’처럼 그에게 적용되는 혜택들이 있었는데도 그랬다.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말한다.
“애초에 (정책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까. 나까지 혜택이 오겠어요? 내 집 마련, 저도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이미 포기했어요. 말 그대로 꿈같은 얘기죠.”
주거 약자를 위한 정책에 주거 약자들이 무관심한 현실. 한국 부동산 시장만큼 주거복지 현장도 뭔가 왜곡돼 있음을 말해준다.
이용상 홍성철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