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있어 다행?… “라면 하나 사먹기도 힘들어”

입력 2017-12-12 07:30

지난 6일 서울 중랑역에서 만난 강영호(가명·79) 할아버지는 집에서 인터뷰하자는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패딩점퍼를 멀끔하게 차려입고 말갛게 면도한 노신사는 “없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는 굳이 커피를 사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흰머리를 윤이 나게 빗어 넘긴 얼굴에서 가난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강 할아버지는 ‘집주인’이다. 그가 소유한 서울 중화동 30평(약 99㎡)짜리 2층 단독주택은 요즘 시세로 2억7000만원쯤 한다. 1층은 세를 줘 임대료를 받고 있다. 강 할아버지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럭저럭 잘사는 걸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임대료 수입은 월 20만원에 불과하다. 부부합산 기초연금 32만원, 국민연금 20만원을 더한 월소득이 72만원 정도. 올해 2인 가구 기초생활수급 기준인 84만4335원에 못 미친다. 강 할아버지는 “자존심 때문에 형편 얘기는 친구들에게 절대 안 한다”고 했다.

그는 ‘집’ 때문에 월소득의 11%에 달하는 8만원을 건강보험료로 내고 있다. 의료비 10여만원, 통신비 5만원, 각종 공과금 10여만원 등 고정비를 빼면 한 달에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30여만원뿐이다. 강 할아버지는 “라면 한 그릇 제대로 사먹기 힘들다. 라면사리 하나를 김칫국 넣고 끓여서 아내와 둘이 먹는다”고 말했다.

요즘 같이 추울 때는 난방이라도 제대로 하고 싶지만 난방비 부담에 그러지도 못한다. 그는 “형편에 맞춰 살려고 추우면 보일러 대신 옷을 여럿 껴입는다. 정부가 냉·난방비를 지원해주면 그만큼 생활비를 아낄 수 있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역 근처에 사는 양민석(가명·69) 할아버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집을 가졌지만 생활비가 빠듯하다. 양 할아버지 부부의 수입은 국민연금 107만원이 전부다. 기초생활수급 기준보다 높지만 2인 가구 최저생계비(112만5780원)에는 못 미친다.

직장생활을 할 때 부모님과 중풍 걸린 장모님을 모시느라 항상 빚이 있었다. 10년 전 장모님을 끝으로 집안 어른이 모두 돌아가시자 서울 신림동 단독주택을 팔아 빚을 갚았다. 집을 줄여 상도동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이번엔 생활비가 빠듯해져 구로동 아파트로 다시 옮겼다. 양 할아버지는 최근에 아들을 장가보내며 또 빚을 졌다.

사정이 이렇지만 보유하고 있는 집 때문에 기초연금을 받지 못한다. 기초연금 수급 기준이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인데 집을 소득으로 환산하면 기준을 넘어선다.

그는 “매달 병원비 20만원에 건강보험료와 공과금까지 50만원 정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50만원뿐”이라며 “서울 집을 처분해 시골로 가면 돈이 조금 남지 않겠느냐. 경기도 파주로 이사해 차액으로 빚 갚고 80세까지 살 수 있을지 따져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글=고승혁 기자, 임연주 인턴기자 marquez@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