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가 연기를?’ 의심에 찬 시선들은 어느새 희미해져 버렸다. 단 두 작품만으로 일궈낸 성과. 나나(본명 임진아·26)의 이름 앞에 붙는 ‘배우’ 수식어가 이제는 꽤나 자연스럽다.
“첫 단추가 정말 잘 꿰어졌죠. 시작이 너무 좋았어요. 욕심 같아서는 계속 상처 없이 (연기하고 싶어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서 지금처럼 좋은 이야기를 들으며 좋게 좋게 잘했으면 좋겠어요. 매 순간이 좋을 수는 없겠지만,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요.”
연기자로서 꽤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는 평가에 대한 나나의 대답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생각들을 차분하게 말로 꺼내놓았다. 무대 위 발랄했던 모습 따위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신중하고 진지했다. 연기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리라.
슈퍼모델로 활동했던 나나는 2009년 걸그룹 애프터스쿨에 합류하면서 본격 연예계에 발을 디뎠다. 유닛그룹 오렌지캬라멜 멤버로 활동하면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드라마 ‘굿 와이프’(tvN·2016)를 통해 처음 연기에 도전했다. 극 중 로펌 조사원 김단 역을 맡았는데, 매력적인 캐릭터와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기대 이상의 호평을 얻었다.
‘꾼’(감독 장창원)은 그가 출연한 첫 영화다. 희대의 사기꾼(허성태)을 잡기 위해 검사(유지태)와 사기꾼들(현빈 배성우 나나 안세하)이 손을 잡고 벌이는 은밀한 작전을 그린 작품. 나나는 미인계로 상대를 현혹시키는 사기꾼 춘자를 연기했다. 반응은 이번에도 긍정적이다. 흥행까지 잡았으니, 더할 나위 없이 성공적인 스크린 데뷔다.
-스크린 속에 비춰진 자신을 본 소감은.
“너무 신기했어요. 선배님들과 한 스크린 안에 있다는 게 영광스러웠어요. 시사회 때는 제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영화가 눈에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웃음). ‘이게 재미있는 건가? 잘 나온 건가?’ 판단도 잘 안 되는 상태였죠. 굉장히 떨렸나 봐요.”
-‘꾼’이라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우선 대본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춘자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제껏 제가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을 충분히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과 걱정을 했어요. 과분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베테랑 선배님들 사이에서 최대한 튀지 않게 잘 어우러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춘자의 자유분방함과 능청스러움을 표현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그 부분이 제일 중요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 있고 당당해야 했으니까. 사기를 칠 때 능청스러운 표정과 제스처가 충분히 표현돼야 캐릭터가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연구를 되게 많이 했는데, 오렌지캬라멜 활동했을 때가 가장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온갖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능청스럽게 무대를 했었는데, 춘자를 연기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웃음).”
-현빈 유지태 배성우 등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는지.
“처음에는 굉장한 부담감이 있었지만, 세 분 모두 제 긴장을 풀어주려고 애를 많이 써주셨어요. 계속 말을 걸어주시거나 ‘잘할 수 있다’고 북돋워주셨죠. 자신감을 갖고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하라고, 다 받아주고 맞춰주겠다고. 항상 그렇게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현빈의 칭찬이 자자하더라.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 보였다고.
“저는 아직 신인배우니까 항상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선배님들이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어요. 현장에서 계속 대본을 보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훌륭한 연기를 하시는 선배님들도 저렇게 노력하시는데 나는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현빈 선배님은 표현을 많이 하시는 분이 아닌데, 저에 대해 그렇게 말씀해주셨다니 그 마음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해요.”
-첫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연달아 영화까지 도전한 소감이 어떤가.
“연기하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고 행복해요. ‘굿 와이프’ 하면서도 하루하루 행복했거든요. 계속 계속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다른 역할을 해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어떤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춘자 역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욕심 때문이었어요. 과하게 섹시하고 완벽한 척을 하지만 약간 허당기 있는 캐릭터여서 새로웠죠. 앞으로도 그런 욕심과 기대감은 점점 늘어날 것 같아요.”
-‘꾼’ 촬영 전, ‘굿 와이프’에서 인연을 맺은 선배 전도연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고 들었다.
“조언을 구했다기보다 하소연을 했어요(웃음). 너무 떨린다고. ‘저 잘할 수 있을까요? 긴장돼요. 선배님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요?’ 불안해했더니 언니는 ‘잘할 거야. 잘하잖아. 금방 적응할 거야’라고 다독여주셨어요. 워낙 제 성격을 잘 아셔서 많은 의지가 돼요.”
-애프터스쿨 멤버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될 것 같다.
“저는 무대 올라갈 때도 매번 떨었거든요. 유독 제가 제일 긴장을 많이 했어요. 멤버들은 그런 저의 성격을 익히 잘 알기 때문에, 연기를 할 때도 얘가 얼마나 긴장하고 떨고 있을지 알거든요. 그래서 항상 응원의 말로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편이에요.”
-연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뭐였나.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나 영화 보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가수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죠. 근데 앨범을 내면서 다양한 콘셉트를 소화하다 보니 매번 연기가 필요하더라고요. 무대도 3분 안에 표현해야 하는 연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드라마 타입의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연기의 재미를 느꼈어요. 그때부터 흥미와 궁금증이 생긴 것 같아요. 멤버들이 하나둘 (연기에) 도전하는 걸 보면서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고요. 그때부터 발성 등 기본기를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어요. 긴 기다림을 견뎌야 했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슬퍼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시작하게 된 연기인데 시작과 동시에 호평을 받았다. 감회가 남달랐을 듯한데.
“너무 신기했죠. 상상하지 못한 반응이었고,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적어도 상대배우에게 피해가 되진 말자’는 생각으로 두려움에 떨며 시작했는데, 그래서 더 노력하게 됐던 것 같아요. 창피할 틈이 없었어요. 전도연 선배님께 물어보고 싶은 거 다 물어보면서 도움을 청했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에 더 오기가 생겼어요.”
-벌써 차기작이 결정된 상태다. 드라마 ‘사자’에서 박해진과 호흡을 맞춘다고. 세 번째 작품 만에 주인공을 맡은 건 꽤나 빠른 속도인데.
“행운이죠. ‘굿 와이프’라는 작품을 만난 것부터 ‘꾼’ ‘사자’까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부족했기 때문에 더 채우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다행스럽고 감사해요.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뭔가 억지로 끼워 맞춘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간 거니까요. 이런 운이 아직 제게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그런데 행복한 과분함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노력하려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려고요.”
-가수 출신 배우들은 본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나’라는 활동명을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나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잖아요. 이 이름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죠. 나나라는 사람도 저인데, 연기자로 전향한다고 해서 굳이 이름을 바꿔야 하나 싶었어요. 이미 정이 많이 들었고, 제겐 너무 소중하거든요. 지금까지 이 이름으로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작품마다 캐릭터의 옷을 잘 입으면 되는 거지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 생각은 아직까진 확고한 것 같아요.”
-향후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 연기에 매진할 생각인가.
“아직 가수 활동 계획이 없어요. 개인적으로 작품을 많이 할 생각이에요.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온다면 다양하게 여러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훗날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정해진 옷이 없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여러 옷이 다 어울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지닌 배우요. 한 가지 색깔만 있는 연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사실상 배우로 전향한 지금, 본인의 길을 찾았다는 느낌이 드나.
“이제서야 찾았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은 찾은 것 같아요. 앞으로 오래오래 연기를 하고 싶어요. 연기뿐만 아니라 가수로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둘 다 잡으면서 같이 가면 좋겠죠.”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