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문상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교수, 소그룹 목회학 디렉터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 을 맞아 교회개혁을 위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줄을 이었다.
개혁교회 또는 개신교의 모토인 ‘개혁된 교회(개신교)는 계속 개혁돼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는 구호에 걸맞은 행동이었다.
과연 개신교를 연 종교개혁자들, 특히 칼빈은 어떤 ‘개혁’ 구조에 관심을 가졌을까?
칼빈은 교회를 부패하게 만든 극소수 독점형 리더십 체제인 교황제를 매우 강하게 비판했다.
수직적 직분 체계는 교황 하나를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도록 만들어 교회가 구조적으로 부패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칼빈은 교회 또는 성직자들의 타락을 낳게 하는 수직적 구조 대신, 수평적 교회 직분제를 제안했다.
특히 칼빈은 교회 안에 목회자들이 전횡을 일삼는 구조를 원천 차단시켰다.
교회 타락의 근원인 교황제의 트라우마를 지울 수 없어서였다.
칼빈은 목회자가 타락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평신도로 하여금 목회자를 견제하도록 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 교회의 일을 목회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서는 교황제에서와 같은 유사한 교회의 타락을 경험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도 견제 받는 장치로서 교회 안에 여러 평신도들과 함께 교회를 치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른바 ‘교회사법위원회’(Consistory), 오늘날로 말하면 당회와 비슷한 기구를 만들었다.
나아가 교회 안에 내규를 만들어 목회자들이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징계를 받아 심지어는 목사직을 내려놓아야 하는 등 파격적 조항도 넣었다.
교회 개혁이란 이처럼 권력의 독점을 막고 이를 통해 물질주의에 함몰되어 목회자 스스로 타락의 길을 걷지 않게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목회자도 인간이기에 세속화의 물결에 휩쓸려 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견제 받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건강한 목회자를 만들고 교회 역시 타락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 된다.
물론 목회자만이 아니다. 장로든 집사든 평신도들 역시 권한 독점형 구조를 즐겨서는 안 된다. 똑같이 타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그룹 목회 구조는 이러한 섬김과 평등의 수평적 직분체계를 가능하게 만든다.
칼빈이 제안하는 수평적 교회 구조의 근간은 예수님만이 교회의 머리라는 성경적 근거에서 비롯됐다(엡 4:16).
예수 그리스도 외에 모든 직분자들은 서로 섬기는 지체인 것이다. 그 누구도 다른 이의 위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개신교 교회는 계급주의적 교황제와는 다르다. 개신교회는 성도들과 ‘함께’ 목회자가 사역을 한다. 소그룹 목회는 이러한 ‘동역’의 구조를 만든다.
소그룹 목회는 주님만을 머리로 한다. 목회자들은 평신도들을 실제로 섬기는 구조를 즐긴다. 소그룹의 형태가 셀 교회든 가정(가족)교회든 모두 서로를 동역자로 여기게 한다. 상호 존중하며 세워주며 지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정착한 소그룹 형태는 실제로는 소그룹 ‘중심의’ 교회라기보다는 소그룹이 ‘있는’ 교회이다. 여전히 수직적 계급 형식의 직분제에 익숙하다.
아직도 예로부터 내려온 권위주의적 문화에게서 벗어나지 못해서이다.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미덕으로 삼는 유교 문화를 무의식적으로 수용해온 결과이다.
그래서 칼빈이 제안한 개신교의 교회 구조로서 수평적 직분제와 교회 운영 방식이 아직 우리에게는 낯설다. 이론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실천적으로는 어색한 게 현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직도 우리는 개혁되어야 할 존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수평적 교회 직분제 및 교회 운영 체제는 단순히 칼빈만의 제안은 아니다. 이런 방식의 교회 구조는 성경적 근거가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교황제 이전에 이미 신약 교회에서는 일부분 시행되고 있었던 체제이다.
교황제가 시행되기 이전에 이미 고대 교회에서는 수평적 교회 구조를 운영했었다. 고대교회에서는 평신도의 의견을 교회의 결정에 최종 단계로서 인정하였던 것이다. 실례로 고대 교회에서 감독을 선출할 때 평신도가 최종 결정권자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평신도는 교회 운영에 매우 깊숙이 관여해왔던 것이다. 목회자와 평신도를 계급적으로 분리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교황제가 오히려 고대 교회의 성경적 수평 직분제를 무너뜨리고 수직적 위계 구조의 직분제를 만들어 평신도를 교회운영에서 철저하게 배제시켰던 것이다.
평신도가 중시되는 교회구조는 무엇인가? 현재까지 우리가 발견한 것으로는 소그룹 중심의 교회이다. 말로만 교회 개혁을 외치지 말자. 구조적 개혁을 도외시한 체 형식만 소그룹 만들거나 당회를 구성하는데 만족하는 한, 교회개혁은 거의 이루어질 수 없다.
목회자가 권한을 내려놓는 구조, 평신도가 교회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구조, 그래서 예수님만이 머리가 되는 구조를 실체화시켜야 한다. 이는 목회자가 평신도를 ‘동역자’로 대우할 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물론 목회자는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기도에 힘쓰며 평신도들을 가족 이상으로 사랑으로 돌보는 일에만 매진하는 것 역시 필수이다.
동시에 평신도들은 소그룹 안에서 가족적 교제를 사랑 안에서 나누고 피차 존중하되 특히 말씀 전하는 자들을 더 존중하는 체제를 구조화하고 교회의 일에 책임의식을 갖고 임해야 한다.
소그룹 중심의 교회는 이런 직임의 고유성을 강화시켜주기도 한다. 궁극적으로는 교회가 고대 교회와 칼빈의 개혁교회 정신이 다시 회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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