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1년] ‘VIP' 동선 챙기며… 헌재는 朴을 기다렸다

입력 2017-12-09 05:50
현직 대통령 탄핵 사건의 결정을 예고하는 헌법재판소의 안내화면. 지난 3월 10일 오전 11시 인용 결정을 내리는 마지막 탄핵 심판이 열렸다. 국민일보DB

현직 대통령 직접 변론 대비 영접·안내 등 꼼꼼히 준비
장관급 김용헌 당시 사무처장이
현관 영접 → 심판정 안내 계획
화장실은 1층 여자화장실 쓰고
1층 중앙홀은 통제하기로
직접 변론 위해 입정할 시각은
변론 개시 1∼2분 전으로 잡아
최후 진술 땐 재판관들이 있는
법대 아래 발언대로 나오도록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진행하던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할 때 어떻게 맞이해 안내할지 꼼꼼히 논의했다. “피청구인이 출석, 재판부와 소추위원단이 묻는 내용에 적극 답변하는 게 사건 파악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것이 헌재의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헌재는 전례가 없던 현직 대통령의 직접 변론에 대해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했던 형편이었다.


헌재는 장관급인 김용헌 당시 사무처장이 박 전 대통령을 중앙현관에서 영접하기로 결정했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을 1층 로비에 걸린 그림 작품인 ‘희망의 나라’ 앞으로 인도하고, 대심판정 서쪽 출입문을 통해 심판정에 들어서도록 안내한다는 계획이었다. 헌재는 휴정 시 1층 소심판정 합의실을 개방, 박 전 대통령이 그곳에서 음료를 마시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이 같은 대통령 영접 방식과 동선 등을 결정하는 데에는 2009년 검찰의 전직 대통령 영접 사례가 참고됐다. 2009년 4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에 출석할 때,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대검 사무국장의 안내로 중앙수사부장실로 올라가 차를 한 잔 마신 뒤 조사실로 향했다. 대통령의 격려 성격 기관 방문이 아니라는 점에서 헌재가 이 사례를 참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화장실을 쓸 경우 1층 여자화장실로 안내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었다. 외부인들도 이용하는 이 화장실로 박 전 대통령이 이동하면, 헌재 1층 중앙홀은 통제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의 차량이 머물 헌재 중앙현관 앞은 박 전 대통령이 헌재에 머무는 동안 외부차량의 주차를 금지한다는 계획도 있었다. 당시 헌재 외곽은 정치적 색채가 극명하게 갈린 집회 인파로 몸살을 앓던 시기였다.

대기실에 있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변론을 위해 입정할 시각은 변론개시 1∼2분 전으로 계획돼 있었다. 이 시각은 재판부와 피청구인 대리인 측 간에 사전 협의를 거치기로 헌재가 배려했다. 헌재는 대심판정 내에 박 전 대통령의 별도의 의자를 마련키로 예정하고 있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최후진술을 할 때는 재판관들이 있는 법대 아래 발언대로 나오도록 한다는 것이 헌재의 계획이었다.

헌재는 청와대 경호실이 대통령의 동선마다 실행하는 전파차단 등 통신제한조치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헌재에 나오면 헌재 대심판정은 경호 목적의 휴대전화 통신장애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헌재는 언론인의 기사 송고 등에 휴대전화를 통한 인터넷 연결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 전파 차단은 하지 않는 방향으로 협의할 계획이었다. 부득이한 차단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차단장비나 구역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 이미 서 있었다.

헌재는 경호실 관계자들이 재판관실·연구관실 다수가 있는 헌재 3층과 4층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통제할 계획이었다. 민감한 사건 관련 기록이 많기 때문에 외부인의 접촉은 엄히 금지되고 있었다. 경호원들의 이동을 승강기가 아닌 계단으로만 안내한다는 내부 방침도 있었다. 헌재는 지난 2월 27일을 최후 변론기일로 통지한 뒤 대부분 직원이 비상근무를 하며 박 전 대통령을 기다렸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대리인을 통해 자신의 의견서를 대신 읽게 했을 뿐이었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