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까지 91일… 무슨 일 있었나
탄핵심판 청구 전부터 내부 준비
공정성 논란에 무작위 전자배당
공식 서면 문건만 2만쪽 넘어
홈페이지 하루 4만명 이상 방문
디도스공격 대비 사이버보안 강화
재판관들 각종 책 주문해 읽기도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12월 9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소추의결서 정본을 접수하러 온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그를 촬영하는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같은 시각 헌재 3층 재판관회의실에서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이미 접한 박한철 당시 헌재소장 이하 재판관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 도중 헌재 관계자가 재판관회의실에 뛰어 올라왔다. 그는 박 소장에게 자료를 건네며 주심재판관 배당 지침을 문의했다. 회의실에서 보고된 자료는 소추의결서 정본이 아니라 헌재가 국회 의안과로부터 이메일로 전달받은 소추의결서를 출력한 사본이었다. 정본은 민원실에 접수돼 스캔, 심판사건처리시스템 등록 절차를 거치는 중이었다. 자료가 헌재 전산망에 등록되기를 마냥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박 전 소장은 이때 “컴퓨터를 이용한 무작위 전자배당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헌재 내부 규칙에 따르면 주요 사건의 별도 배당 방식도 가능했지만, 추첨 방식을 선택했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조금의 공정성 논란도 없도록 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결국 소추의결서 등의 업로드와 사건정보 입력을 다 거친 뒤 무작위 전자배당이 실시됐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출장 중이던 강일원 재판관이 탄핵심판의 주심재판관으로 결정된 시각은 이날 오후 6시40분이었다. 헌재는 즉각 피청구인인 박 전 대통령 측에 탄핵심판 사건접수 사실을 알렸다.
헌재는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가 이뤄지기 전인 지난해 11월부터 내부적으로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고 한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대통령이 자유롭지 못하며, 탄핵안이 가결될 것이라는 여론은 이전부터 비등했던 상황이었다. 사건 접수 이후에는 한 업체와 컬러 디지털 복합기 임대 계약부터 맺었다. 헌법적 비상상황 속에서 재판관과 연구관들의 원활한 심리 지원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빠른 기록 배분이었다.
이후 탄핵심판 과정에서 청구인과 피청구인 대리인이 제출한 공식 서면 문건은 2만쪽을 넘었다. 문서송부촉탁 결정에 따라 각 기관으로부터 회신 받은 각종 자료도 4만1009쪽이었다. 헌재 내부에서 심판 준비를 위해 사용한 복사용지만 45만장, 기록의 이송에 이용된 트럭이 3대에 이르렀다. 중회의실에는 연구관들의 의견 교환을 위해 빔프로젝터가 설치됐다.
준비절차기일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행적을 제출하라는 재판부의 석명 요구가 이뤄졌다. 대통령의 파면 여부에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고 촛불·태극기 집회가 연일 이어졌다. 헌재는 홈페이지를 정비했다. 1월 한 사설업체의 서버를 대여하기로 결정하고 인터넷 회선을 대폭 증속했다.
재판이 변론기일 단계로 넘어가고 대심판정 내 변론 장면이 동영상으로 홈페이지에 게재되기 시작하자 헌재 홈페이지를 찾는 이들이 더욱 늘었다. 3월 10일을 선고기일로 한다는 사실이 발표된 이후에는 하루 4만명 이상이 방문했고, 선고 당일에는 7만5000여명이 접속했다. 헌재는 만일의 디도스(DDos) 공격에 대비해 사이버보안을 강화했다. 선고 당일에는 사이버보안 전문가 6인이 상주했다.
헌재는 탄핵심판 내내 일거수일투족을 주목받았다. 헌재를 찍는 ‘몰카’가 발견된 일도 있었다. 지난 1월 헌재 주변 건물에 고정형 카메라가 설치된 것을 감지하고 철거를 시도했다. 헌재는 이후 액체폭발물 탐지기를 구매 결정하는 등 보안장비 강화에 나섰다.
헌재가 언론에 공표했던 도청방지 장비의 경우 박 전 소장 등 재판관들의 방과 재판관회의실 이외에 지하 식당에도 설치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헌재는 이후 부장 및 팀장 연구관실, 연구관회의실 등에 추가로 도청방지 장비가 필요하다는 방침을 세우고 예비금 지출을 의결했다. 헌재 정문 앞까지 집회 인파가 몰려들고 재판관별 인용·기각 판단이 유언비어로 나돌던 때였다.
헌재의 탄핵심판 자료집에는 재판관들이 탄핵심판 중 긴급하게 책을 주문해 읽은 사실도 담겼다. 재판장 역할을 수행한 이정미 전 재판관의 경우 ‘탄핵을 탄핵한다’ 등을 주문했다. 이 도서는 당시 박 전 대통령 측 대리인으로서 탄핵 반대 입장을 강조하던 김평우 변호사가 국회의 탄핵소추 자체가 부당하다는 취지로 펴낸 책이었다. 재판관들에게 등을 돌리고 변론을 펴던 김 변호사의 언행은 논란을 낳았고, 이 전 재판관이 “지나치다”며 제재하기도 했다.
김이수 재판관은 ‘세월호, 그날의 기록’ 등의 도서를 주문했다. 실제로 김 재판관은 변론기일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고, 선고 때에는 이진성 헌재소장(당시 재판관)과 함께 “세월호 사건 당일 대통령의 행동은 헌법상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보충의견을 제시했다. 김창종 재판관은 ‘공무원의 헌법상 지위’ 등 도서를 주문한 기록이 자료집에 남았다.
재판관 8인은 사건접수 91일 만인 지난 3월 10일 선고를 내리고, 결정문에 결재하는 것으로 모든 탄핵심판을 끝냈다. 이 종국결정문 정본은 전자문서유통시스템을 통해 피청구인 본인인 박 전 대통령에게 전자 송달됐다.
재판관 8인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 인용이 결정된 날, 헌재에는 칭찬과 비난의 전화가 반반의 비율로 쇄도했다고 한다. 심판결과를 칭찬하는 이들은 “협박에 겁먹지 말라” “법치를 세워준 헌재에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며 헌재를 격려했다.
한 시민은 “직원들끼리 떡을 만들어 보내겠다”고 했고, 또 다른 시민은 “3월 10일의 탄핵 인용을 기념해 장미꽃 310송이를 전달하고 싶다”고도 헌재에 전했다. “이정미 권한대행의 경호가 끝나게 되는가, 필요하다면 나라도 경호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온 시민도 있었다고 한다.
반면 심판결과를 비난하는 이들은 ‘인민재판’ ‘졸속재판’ 등의 말로 헌재를 공격했다. “재판관들과 전화통화를 원한다”거나 “재판관들의 주소를 알려 달라”고 요구하는 시민도 있었다. “9명이 아닌 8명의 재판관이 결론을 내린 것은 위헌” “8명이 일치된 결정을 한 것은 사전에 말을 맞춘 것”이라는 의견도 접수됐다고 한다. 헌재가 지난 3월 14일 집계한 결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도중 국민들로부터 접수된 탄원서는 총 799건, A4용지 박스 40개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