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심판결과 선고 직전
당초 작성한 원고 16곳이나 교정
탄핵 앞두고 고심한 흔적 드러내
헌재, 당시 朴 전 대통령 출석 대비
대기실·화장실 동선 결정해두기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재판장이었던 이정미(사진)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3월 10일 심판결과 선고 직전 애초 원고에 없던 ‘화합과 치유의 길’이란 문구를 직접 써넣은 것으로 8일 확인됐다.
이 전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의 파면 주문에 앞서 낭독한 ‘선고에 즈음한 소회’에서 “더 이상의 국론분열과 혼란이 종식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쇄된 문장을 “더 이상의 국론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고쳤다.
이 전 재판관이 원고를 육필로 교정한 부분은 띄어 읽기를 표시한 것을 제외하면 총 16곳이었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고심한 대목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이다.
이 전 재판관은 “국민들께서도 많은 번민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셨으리라”는 원고 첫머리를 “국민들께서도 저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많은 번민과…”로 교정, 헌법재판관들의 고민을 드러냈다. “법치주의는 흔들려서는 안 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가야 할 가치”라고 돼 있던 문장에는 ‘헌법’을 추가, “헌법과 법치주의는 흔들려서는 안 될…”이라 고쳐 읽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사유 중 공무원 임면권 남용 여부를 살피는 대목에서 애초 ‘노태강’으로 인쇄된 부분은 ‘노 국장’으로 고쳐졌다. “김기춘이 제1차관에게 지시하여”라고 돼 있던 부분은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에게…”로 분명히 교정됐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의 문장 직후에는 “이 결정에는 재판관 김이수 이진성 안창호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육필로 써 넣어 선고 직전 최후의 평의 순간을 시사했다. ‘최성원’이라는 오기를 ‘최서원’(최순실씨의 본명)으로 바로잡은 부분도 있었다.
실수 없는 낭독을 위한 다짐도 엿보였다. 이 전 재판관은 원고의 맨 앞장 오른편 위에 ‘천천히’라는 글씨를 크게 써 넣었다. ‘3차례의 준비기일’ ‘17차례에 걸친 변론기일’을 각각 ‘세 차례’ ‘열일곱 차례’라고 고친 흔적도 있었다.
헌재는 이 전 재판관의 낭독 직후 이 원고 원본을 확보해 보존 중이다. 이 전 재판관의 육필 사본은 헌재의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심판 자료집’에 담겼다. 내부 참고용인 이 자료집은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해 헌재에 심판을 청구한 지 1년 만인 최근 발간됐다.
헌재는 탄핵심판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대심판정에 출석할 경우를 대비해 대기실과 화장실 등의 동선 하나하나를 결정한 상태였다. 경호실 관계자들이 재판관실이 있는 3층을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침도 서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끝내 헌재에 나오지 않았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