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보도] ‘지진 트라우마’ 포항 흥해체육관은 지금… ‘친구’ 된 아이들 ‘시끌벅적’

입력 2017-12-08 07:45 수정 2017-12-08 07:51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후속보도]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뉴스페이지에서 독자들이 ‘후속기사 원해요’ 공감 버튼을 많이 누른 기사 중 선별해 그 후의 이야기를 취재한 것입니다. 뉴스를 읽어도 남는 궁금증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될까’의 답을 르포, 심층기획, 인터뷰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합니다.

경북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이재민을 위한 텐트들이 늘어서 있다. 아이들 몇 명이 7일 오후 텐트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오후 3시 지나자 모여들어
어린이 20명 등 370명 생활
처음엔 낯설어했지만
아이들끼리 잘 어울려
공동생활 불편은 여전
늦게까지 떠들어 마찰도


“친구들이랑 놀면 너무 재미있어요.”

지진 피해를 본 경북 포항을 7일 다시 찾았다.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대피소)에서 만난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해맑은 모습이었다. 어른들은 일터로,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학교로 가 한산하던 대피소는 오후 3시가 지나면서 활기를 띠었다.

아이들은 가방을 텐트에 던져놓고는 바로 대피소 내 놀이방으로 모여들었다. 흥해실내체육관에는 370여명의 이재민이 생활하고 있는데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는 20여명이다. 놀이방은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된다. 아이들은 돌봄교사와 종이접기를 하거나 목마 등을 타고 놀았다. 놀이방뿐만 아니라 대피소 내 텐트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조모(7)양은 “놀이방에 오면 친구도 있고 놀 것도 많아 재미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처음 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지진 직후 아이들은 잘 모르는 어른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을 어려워했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많은 이들이 대피소 아이들을 보며 가슴 아프게 느꼈던 이유다.

하지만 지금은 밥도 잘 먹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 어린이집에서 만난 3남매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처음엔 낯설어했는데 이제는 밥도 간식도 잘 먹는다”며 “이곳에 친구들이 많다 보니 집에 있을 때보다 더 재미있게 논다”고 말했다.

2세, 5세 두 아이와 함께 대피소에 와 있는 허모(34·여)씨도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지고 있다”며 “둘째는 지진이 난 후 나와 떨어지려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놀이방에 오면 혼자 놀기도 한다”고 했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던 돌봄교사(61·여)는 “지금은 아이들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며 “대피소에서 만난 친구들과 친해져 이제는 놀이방이 시끌벅적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저녁시간이 되자 익숙한 듯 엄마 손을 붙잡고 급식소로 향했다.

아이들은 밝아졌지만 협소한 텐트에 의지해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불편한 생활은 여전했다. 권모(20)씨는 “밤에 어르신들이 일찍 주무시는데 아이들이 늦게까지 뛰어놀아 작은 마찰이 생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배려를 많이 한다”고 했다.

아이들 모습만으로 안심하기에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포항시건강가정지원센터 남현숙(45·여) 담당은 “같은 상황의 아이들이 모여 서로 의지하다보니 지진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잊고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아직 트라우마가 남아있기 때문에 부모와 학교,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흥해공고 대피소 놀이방에서 아이들을 돌봤다는 한 돌봄교사는 “한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데 검은색으로만 색칠을 해 놀란 적이 있다”며 “마음을 한 번 다친 아이들이기 때문에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포항엔 흥해체육관, 흥해공고, 포스코수련원, 독도체험관, 마을경로당 4곳이 대피소로 운영되고 있다. 아직까지 800여명의 주민들이 대피소에 머물며 집으로 돌아가거나 대체 가옥으로 이주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중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들은 40∼50명이다.

포항=글·사진 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