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열기’ 댓글은 누구의 흔적일까. 인터넷상 정황을 종합하면 ‘정치 성향이 뚜렷하지만 컴퓨터나 스마트폰 활용에 미숙한 인터넷 이용자’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특정 정치세력의 ‘댓글 부대’라는 의심이 나오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
1. 맥락 없이 ‘옵션 열기’로 시작한 의문의 댓글들
‘옵션 열기’는 지난 5일 한 트위터 이용자가 포착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 댓글을 계기로 주목을 끌었다. 이 이용자는 공무원 충원을 다룬 인터넷뉴스 댓글 게시판에서 “옵션 열기 공무원수 늘리면 나라 2년 안에 망하고 최저 임금 올리면 1년 안에 망한다. 법인세 인상하면 3년 안에 망한다. 그런데 문재인 이 인간은 이 3개를 모두 같이 한다. 대한민국 끝났다”고 적힌 댓글을 발견했다.
댓글 첫 문장에 등장한 ‘옵션 열기’는 문맥상 어색했다. 그 아래에는 “어디서 복사했기에, 옵션 열기 공무원은 뭐야”라는 추가 댓글이 따라 붙었다. 이 댓글들을 타임라인에 소개한 트위터 이용자는 “‘댓글 부대’가 급했는지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복사해 붙였다”고 했다. 이 이용자의 게시물은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로 퍼졌다.
2. 쫓고 쫓기는 ‘옵션 열기’ 댓글 추격전
‘옵션 열기’는 누군가가 정치적 주장을 반복적으로 유포할 목적을 갖고 게시글이나 댓글을 복사해 붙여 넣는 과정에서 실수로 남긴 흔적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명박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주도로 운영됐다고 의심을 받는 ‘댓글 부대’의 정황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옵션 열기’ 게시글과 댓글은 대부분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t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는 7일 아침 방송에서 ‘댓글 부대’와 관련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증거로 볼 만한 것을 찾았다. 지금 포털 사이트에서 우리말로 ‘옵션 열기’ 네 글자를 검색하다. ‘옵션 열기’란 단어가 포함된 댓글이 나온다”고 말했다.
‘옵션 열기’는 그 이후 포털 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장악했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각각 활동하는 포털 및 커뮤니티 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검색 기능을 활용해 ‘옵션 열기’로 문장을 시작한 글들을 찾았다. ‘옵션 열기’만이 아니라 ‘댓글 모음’이나 ‘댓글 운영 기준 안내’도 유사한 게시글과 댓글을 찾는 방법이라는 조언이 나왔다.
‘옵션 열기’ 댓글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옵션열기가 이슈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원문 작성자에 의해 재빠르게 삭제돼 증거가 인멸되고 있다”며 ‘작성자에 의해 삭제된 답글입니다’라는 안내문구만 표시된 포털 사이트 뉴스 게시판 화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1만5000개 넘게 댓글이 달린 기사 한 건에서 2000개의 댓글이 사라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3. ‘옵션 열기’는 무엇인가
‘옵션 열기’가 어느 전자기기나 게시판의 기능을 나타낸 문구인지 확인되지 않아 한동안 궁금증이 증폭됐다. 확인 결과, 그 비밀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뉴스 아래 댓글에 있었다. 네이버에서 자신의 아이디로 로그인한 뒤 뉴스 게시판에 댓글을 적고, 그 내용을 복사할 때 자동으로 따라왔다(시연 GIF사진 참고·기자의 네이버 아이디를 활용해 시연했고 즉시 삭제했습니다). 복사한 댓글 내용을 붙여 넣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이디와 글 내용 사이에 ‘옵션 열기’라는 문구가 자동으로 생성된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활용에 미숙한 포털 사이트의 중·장년층 회원이 정치 관련 게시물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남긴 흔적이라는 추정은 ‘옵션 열기’ 생성 과정을 보면 더 선명한 근거를 갖는다. 젊은이의 관심사인 운동선수, 가수, 게임 등의 키워드에서 ‘옵션 열기’의 흔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일부 극우성향 커뮤니티에서는 문 대통령 지지자의 ‘자작극’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댓글 부대’ 수사의 속도를 높일 목적으로 정황 증거를 조작해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옵션 열기’는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5년 게시물에서도 검색된다. 이명박·박근혜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과정에서도 ‘옵션 열기’가 흔적으로 남기도 했다.
국민일보 더피플피디아: ‘옵션 열기’ 댓글
더피플피디아는 국민(The People)과 백과사전(Encyclopedia)을 합성한 말입니다. 문헌과 언론 보도, 또는 관련자의 말과 경험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백과사전처럼 자료로 축적하는 비정기 연재입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