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32)가 러시아 ‘도핑스캔들’의 유탄을 맞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도핑스캔들을 이유로 러시아의 2018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을 금지하면서다.
IOC는 6일 스위스 로잔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선수의 집단적 금지약물 복용이 국가 주도로 이뤄진 러시아의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평창동계올림픽은 2018년 2월 9일 개막한다. IOC가 그 전까지 결정을 뒤집지 않으면 러시아는 국가대표를 강원도 평창에 파견할 수 없다.
러시아 국적 선수가 출전하기 위해서는 금지약물 복용 이력이 없다는 사실을 IOC에 증명해야 한다. IOC 심사를 통과하면 ‘러시아 국가대표’가 아닌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lympic Athlete from Russia·OAR)’ 자격을 얻는다.
OAR 선수는 러시아 국기 뜨리꼴레(Триколор)를 가슴에 붙일 수도 없다. 올림픽 상징인 오륜기를 붙인다. 금메달을 획득해도 러시아의 것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시상식장에선 러시아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연주된다. 중립국 선수로 분류되는 셈이다. 보통은 국가대표를 소집할 수 없는 내전국, 신생 독립국 선수들이 이 방법으로 출전한다.
러시아는 동·하계를 가리지 않고 여러 종목 선수들이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발각돼 수년 간 홍역을 치르고 있다. 모두 국가 차원에서 주도됐고 은폐된 올림픽 사상 최악의 스캔들이다.
러시아 도핑스캔들의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은 안현수다. 평창동계올림픽은 30대로 들어선 안현수의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를 올림픽이다. 2002 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안현수에게는 네 번째 올림픽 트랙. 더욱이 개최국 한국은 6년 전까지 조국이었다. 안현수에게 평창동계올림픽은 누구보다 특별할 수밖에 없다.
안현수는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을 달성한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이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쇼트트랙대표팀의 오랜 파벌 싸움, 2010년 소속팀 성남시청의 해단 등으로 암흑기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엇갈린 여론에 휘말려 2011년 12월 러시아로 귀화했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은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하고 처음 출전한 올림픽이었다. 안현수는 쇼트트랙 남자 500m, 10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남자 1500m 동메달도 수확했다. 반면 우리나라 남자 쇼트트랙대표팀은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평창을 향한 안현수의 여정은 험난해졌다. 이미 ‘평창 보이콧’ 움직임이 시작된 러시아에서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OAR 자격마저 거부할 경우 안현수 역시 동참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애증의 모국을 떠나면서 태극기를 뗐고, 두 번째 조국에서 뜨리꼴레마저 떼야 하는 운명이 안현수 앞에 놓였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