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시한을 나흘 넘기며 진통을 겪은 국회 ‘예산안 대결’은 여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우리가 추구한 것은 다 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우 원내대표에게 전화해 “수고하셨다”고 격려했다.
◇ 명분과 실리 모두 챙긴 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은 6일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명분과 실리 모두를 챙겼다. 여소야대의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적인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소득세법 개정안은 정부안대로 관철됐다. 기초연금 인상 역시 시행시기를 다소 늦췄을 뿐 사실상 정부안이 받아들여졌다. 법인세 인상의 경우 과표구간을 2000억원 초과에서 3000억원 초과로 상향했지만 25%의 최고세율을 유지해 초대기업 증세라는 취지를 살렸다.
최저임금 인상분 보전을 위한 일자리 안정자금은 올해 기준으로 정부가 제시한 2조9700억원 규모를 유지했다. 자유한국당이 일자리 안정자금은 내년만 한시적으로 지원하자고 주장했지만 합의문은 향후에도 지원 가능성을 열어뒀다.
가장 큰 쟁점인 공무원 증원의 경우 정부안인 1만2221명에서 2746명을 축소한 9475명에 합의했다. 애초 목표치에는 못 미치나 연평균 공무원 충원 규모가 7000명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약 2500명의 ‘순증'이 이뤄진 셈이다. 특히 지난해 문재인 정부 첫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당시 국회가 공무원 증원 규모를 4500명에서 2875명으로 약 36% 삭감된 데 반해 이번에는 22% 삭감으로 폭을 줄였다.
아동수당 도입은 만 5세 이하 아동에게 전원 지급하기로 한 데서 하위 90%에 해당하는 아동에게 지원키로 수정했다.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보편적 복지의 철학이 깨졌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다수는 수용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예산안 합의와 관련해 "일단 우리가 추구한 건 다 됐다고 본다. 공무원 증원도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사회서비스 현장공무원을 충원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밖에도 전체적으로 약간씩 변형이 있었지만 사람 중심 예산이라는 기조를 살린 것으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 “야당이 제시한 의제는 없었다”
이번 협상에서 여당이 판정승을 거둔 데는 원내지도부의 협상 전략이 주효했다. 여당이 제시하는 의제대로 협상이 진행됐다. 쟁점이 됐던 ▲공무원 증원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아동수당 지급 ▲기초연금 인상 ▲법인세·소득세 인상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과 맞닿은 사안이었다. 야당이 주도적으로 제시한 주제는 없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핵심관계자는 통화에서 "우리가 야당이었던 작년의 경우 예산안에 없었던 누리과정을 관철했었다"며 "이번 예산안에는 야당이 제기한 의제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제시한 프레임에서 줄이고 조정했다"고 평가했다.
국민의당을 설득해 한국당을 압박한 것도 협상 결과를 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특히 협상이 타결된 4일 오전 우 원내대표는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조찬 회동을 갖고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을 고리로 한 국민의당의 협력을 끌어냈고 국민의당과의 공조를 통해 힘을 발휘하려던 한국당의 전략을 무력화시켰다.
◇ 문 대통령 “협상 잘됐다” 격려 전화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여야의 예산안 합의 직후 우원식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협상이) 잘 된 것 같다"고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예산안 합의안을 발표한 직후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통해 우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 등과 함께 협상 결과를 정리하고 있던 우 원내대표가 전화를 받지 못했고, 문 대통령이 저녁에 다시 전화를 걸어 우 원내대표에게 "애쓰셨다. (협상이) 잘 된 것 같다. 끝까지 마무리 잘해달라"는 인사를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우 원내대표는 "협상에 어려운 점과 아쉬운 점이 있었으나 본질을 훼손하지 않은 결론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에서도 내부 보고를 통해 대체로 협상이 잘 됐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협상이 기대 이상이라는 게 중론"이라고 했다. 우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태년 정책위의장, 박 원내수석 등 지도부는 4일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문 대통령이 전화한 사실을 공유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노고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