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피해자 구제에는 한 마디 언급이 없었다. 이런 부분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앞으로 국내 채용시장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금감원 채용비리 사건의 피해자 정모(32)씨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9월 감사원은 금감원 채용비리 사건을 발표했다. 금융회사들에 대한 검사·제재 권한을 갖고 관리 감독하는 금감원이 채용 과정에서 비리를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정씨는 앞서 금감원 채용에 2012년 2014년 2015년 세 차례 지원했다가 모두 낙방했다. 긴 시간을 들여서 진행되는 1차 면접 점수는 매번 좋은 편이었는데 2차 면접에서 아깝게 탈락했다. 이른바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이 아니어서 그런 줄로 생각했다.
정씨는 검찰로부터 참고인 조사에 협조해달라는 전화를 받은 후 채용비리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봤다. 자신이 채용비리의 피해자였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됐다.
정씨는 2015년 하반기 지원했던 금감원 신입직원 채용에 지원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정씨의 필기와 1차·2차 면접시험 점수를 합산하면 전체 2위 성적이었다. 예정 채용인원이 2명이었기 때문에 합격선에 들었다.
그런데 금감원은 추가로 평판 조회를 실시하면서 정씨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만 기재해 올렸다. 1위 지원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1위 지원자와 2위인 정씨는 탈락했다. 3위인 A씨가 합격하게 됐다.
정씨는 금감원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젊을 때 어디에 취업이 됐고 무슨 일 했는지는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이 달라지는 문제인데 등급까지 나온 상태에서 조작이 됐다는 게 안타깝다.” 아래는 정씨와의 일문일답.
-소송을 내는 것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소송을 내는 이유는?
“고민이 많았다. 현실적으로 법적 판단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개인 소송이라 금전적인 부분도 무시는 못한다. 검찰 조사 결과를 기다려 볼까 생각 했는데, 모든 초점이 관련자들을 어떻게 처벌할 지에 대해 맞춰져 있더라. 이 사건은 다른 사건과 다르게 명백하게 채용돼야 할 사람이 분명히 드러난 사건인데, 금감원은 피해자 구제에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소송을 해야 조금이라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게 됐다. 제가 승소하면 사회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일 아닐까 생각을 한다.”
-세 번 낙방을 했는데 앞서 시험 볼 때의 상황은 어땠나.
“불합격 됐을 때 다음에도 지원하려고 성적을 물어봤다. 금감원에서는 성적을 구체적으로 안 알려줬지만 1차 면접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2차 면접은 안 좋은 편이었다고 했다. 1차는 오히려 하루 종일 팀 별 과제를 하고 인성면접을 하면서 진행을 한다. 2차는 짧게 진행하는 편인데 면접 접수가 안 좋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스카이’ 같은 명문대가 아니어서 불이익을 받았을 거라 생각 했다. 그건 억울해도 그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 세 번째 시험을 볼 때는 휴직하고 2차에서 불이익을 받더라도 필기를 잘 받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했다.”
-최근 채용비리 사건을 보면서 느낀 것은?
“최근 일련의 채용비리 사건들을 보면 정황적으로는 다 비리가 드러났는데 구체적 증거가 없어서 처벌 못하거나 구제 못하는 게 많다. 피해자들은 분개하는데 조치 결과는 허무해지는 게 많다. 이렇게까지 채용비리의 사실관계가 드러났는데 피해자가 구제를 받지 못하고 바로 잡히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채용시장은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송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소회는?
“금감원이 혁신을 한다고 하는데 피해자들에 대한 조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기자들이 금융위원장이나 금융감독원장에게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다. 관련자 처벌은 외부에서 할 일이고 피해자에 대해선 금감원에서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금감원에 지원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처음에 증권사를 다니면서 금감원 입사 결심을 했다. 세 번이나 지원을 했는데, 안정적이고 돈 많이 준다는 것 때문에 지원한 건 아니었다. 금융 분야 정의를 구현한다는 특유의 업무에 이끌렸다. 채용될 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도전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젊을 때 어디에 취업이 됐고 무슨 일 했는지는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인생이 달라지는 문제인데 등급까지 나온 상태에서 조작이 됐다는 게 안타깝다.“
-소송에 대해 걱정되는 부분은 없나
“사실 그런 말도 많이 들었다. 네가 소송 하면 어쩔 거냐. 소송을 내서 이긴다고 쳐도 이렇게까지 하면 금감원 들어가서 일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이건 그대로 묻히는 거였다는 생각에 소송을 내게 됐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