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원치 않았던 75센트짜리 ‘히틀러의 그림’

입력 2017-12-05 16:34 수정 2017-12-05 16:35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한 가장은 올 초 벼룩시장에서 비엔나의 거리가 담긴 수채화 한 점을 75센트(약 750원)에 구입했다. 그림을 사들고 집에 온 그는 비로소 왼쪽 하단에 빨간색으로 ‘A.Hitler’라는 서명이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빠가 사온 그림이 히틀러가 그린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딸은 그림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치워뒀다. 이윽고 집에 히틀러 그림이 있다는 사실조차 싫어진 딸은 그림을 경매에 넘기려 했으나, 경매사들도 거부하고 말았다. 이곳저곳에서 거부당한 이 그림은 결국 네덜란드 국립 전쟁 증거자료 연구소(NIOD)로 넘겨졌다.

1912년에 그린 히틀러의 작품. 오른쪽 하단에 빨간색 글씨로 'A. Hitler'라고 적혀있다.

지난달 25일 NIOD는 히틀러가 그린 수채화 한 점을 올봄 익명의 한 여성에게 기증받았다고 밝히며 감정 결과를 발표했다. NIOD는 “수개월에 걸쳐 감정한 결과,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 구시가지 탑이 보이는 풍경을 그린 이 수채화는 히틀러의 그림이 맞다”고 밝혔다. 이어 “조작된 히틀러 그림이 워낙 많아 감정이 오래 걸렸다”며 “하단의 서명과 물감, 종이 등을 모두 살펴봤다”고 전했다.

그림 뒷면에 있는 우표의 원산지는 NIOD가 직접 연구했고, 수채화를 그린 종이의 감정은 암스테르담 대학의 한 종이 보존처리 전문가가 맡았다. 종이로 된 작품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이 전문가는 “위조된 종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단 하나도 없었다”고 밝혔다.

NIOD 책임자 프랑크는 “이 그림이 경매에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증받기로 결정했다”며 “경매사들마저 나치를 상징하는 이런 작품을 거부하고 있다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작품을 손에 쥐자 역사가 느껴졌다”며 “네덜란드에서 히틀러의 그림을 지닌 유일무이한 문화유산센터가 됐다”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 화가를 꿈꿨던 히틀러는 1909~191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살면서 그림엽서를 그려 생계를 유지했다. 이렇게 히틀러가 남긴 그림은 2000~3000장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800장가량이 남아있다. 남아있는 일부 그림은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미국 등지로 흩어져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미군은 전쟁 중 몰수했던 4점의 그림을 아직까지 보유하고 있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