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지능이 학습능력 절대적 기준 아니다

입력 2017-12-05 14:23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우리나라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수년 째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세계 최장의 공부시간과 세계 최고의 학습 스트레스 지수라는 기록과 무관치 않으리라. 하물며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주어지지 않을 때 느끼는 좌절감은 자칫 자신을 무가치한 사람으로 규정짓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K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다. 집중을 하지 못해 성적이 너무 부진하다고 병원을 찾았다. K 부모는 "아이가 어려서는 말을 잘 듣고 고분고분 하여 공부도 시키는 대로는 해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니 성적이 떨어지고 차츰 책상에 있어도 딴짓을 하고 멍 때리거나 게임에만 몰입한다고 했다.

K와 이야기를 해보니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이 머리가 나빠서 잘 할 수가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무관심하려 했다. 딱히 재미있는 일도 없으니 게임을 하지만 게임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부부 교사이신 부모님은 K의 학습에 관심이 많아 공부에 관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부모가 외동인 자신에게 거는 기대를 충분히 알고 있었고 부담도 많이 느꼈다. 그래서 학원이다 과외다 하며 바쁘게 다니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교사인 부모는 직장에서 보는 우수한 아이들과 은연 중에 자신을 비교했고,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 설정해 놓았다. K는 기대의 선이 너무 높아 허덕이며 ‘나는 머리가 나빠 해도 소용없어’라며 지레 무력해졌다. 특히 고등학교에 와서는 K는 우울했다.

그렇다면 지능이 학습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대체로 40-50%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절반 이하다. 머리가 나빠서 보다 다른 요인이 더 많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지능의 정의는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전 지식과 경험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원래는 특수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학습과 관련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일부에 그친다. 그러므로 사람의 지적인 능력이 학습 성과 전반을 측정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학습에는 지능보다는 실행기능과 학습 동기가 더 중요하다. 첫 번째 실행기능은 과제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계획을 세워 정리 조직화하고 과제를 개시하고 시간을 관리하고 융통성을 가지고 목표에 집중하며 불필요한 반응을 억제하는 능력이다. 전두엽의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만 5세 까지는 완성되지 않고 꾸준히 발달 할 수 있다. 청소년기에도 다시 발달할 수 있다. 이런 실행기능의 발달이 더딘 극단적인 예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이다.

두 번째 학습 동기다. 동기를 가지려면 자기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와 자기 신뢰가 있어야 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어야 하며 노력에 대한 태도가 건강해야 한다. 성취의 결과를 해석함에 있어서. 외적 귀인하는 사람, 즉 환경을 탓하거나 남 탓을 하거나 운을 탓하거나 머리를 탓하는 사람보다는, 내적 귀인, 즉 자기 내부에서 원인을 찾고 개선 가능한 노력을 하는 사람은 대처행동이 달라진다.

K는 우선 ‘자기에 대한 신뢰도’의 변화가 필요했다. 조그마한 성취의 경험이 모여서, 성취동기가 높아질 것이고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해보며 자기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이것만은 정말 자신 있어’ 할 만 한 것 하나씩만이라도 만들어주자. 뭔가를 잘할 수 있다는 ‘유능감’이 있어야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