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국민청원 제도를 시행한 지 106일 만인 3일 현재 5만6000여건의 국민청원이 접수됐다. 하루 평균 530여건의 국민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셈이다. ‘여성가족부와 성범죄 특별법 폐지 청원’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나 ‘신광렬 부장판사 해임 청원’ 등 삼권분립 위배 소지가 있는 청원도 다수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날 ‘주취 감형 폐지 청원’이 추천자 수 21만명을 넘어서면서 청와대 답변 대상이 됐다.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를 감형 요소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는 ‘나영이 사건’의 범인 조두순씨가 음주 후 심신미약을 이유로 15년에서 12년으로 형을 감경 받은 것에 따른 청원이다.
2020년 12월 만기 출소를 앞둔 조씨에 대한 출소 반대 청원도 60만명이 넘는 추천자가 몰렸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장의 활약으로 중증외상센터를 지원해야 한다는 청원은 25만명이 넘는 추천자를 확보했다.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초과 달성한 청원은 이르면 다음달 초 청와대 및 정부의 답변을 받게 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씨 출소 반대 청원과 주취 감형 청원은 ‘나영이 사건’과 관계돼 있기 때문에 함께 답변할 가능성이 있다”며 “다음달 초 답변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경사진 주차장에 주차경고 문구를 설치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국민청원은 현재 추천인 수 4위(12만4407명)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올라온 이 청원은 지난 10월 1일 서울랜드 주차장에서 사고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올린 것이다. 당시 핸드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은 차량이 완만하게 경사진 주차장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아이를 치었다. 46개월이던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지만 사망했다. 청원자는 “주행하는 차 말고 주차돼 있는 차도 피해야 하는 세상이 정상인가”라고 청원 이유를 설명했다.
국민청원의 대상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다. 때문에 청와대나 정부가 해결하기 힘든 사안도 자주 청원 대상이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출국금지 청원, 자유한국당 해산심판 청원, ‘여성가족부와 성범죄 특별법 폐지 청원’ 등이 그렇다. ‘신광렬 부장판사 해임 청원’ 같은 사법부 권한을 침해하는 청원도 추천인 수 2만명이 넘어 상위에 랭크돼 있다. 신 부장판사는 지난달 말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을 구속적부심을 통해 석방 결정해 일부 여당 의원들의 비판을 받았다.
지난달 16일에는 ‘군 위안부 도입 청원’까지 올라왔다. 군인들이 무보수로 2년간 병역의무를 이행하니 군 위안부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이 청원은 네티즌들의 비판으로 삭제됐으며 청원자 처벌을 주장하는 청원도 같은 날 게재돼 추천인 수 8만2000명을 넘겼다.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를 폐지해야 한다는 청원은 지난 1일 올라왔다. 같은 날 홍콩에서 개최된 MAMA의 수상자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게 청원 취지다. 청와대 관계자는 “5만6000여건의 청원 중 추천인 수 20만명을 넘긴 청원은 5건뿐”이라며 “어떤 청원이 중요한지 국민들이 잘 판단하고 계실 것”이라고 했다.
국민청원 과열 양상은 국회가 민원 창구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국회가 국민의 문제 해결 창구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의미”라며 “다만 민원이 청와대로 쏠리면 각 부처가 해야 할 일을 청와대가 모두 안게 되는 불균형이 생긴다. 월권, 가이드라인 논란을 불식시키는 신중한 답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