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미옥’이고 여성 누아르라는 타이틀이 있다 보니 영화를 기대하신 분들에게 반감이 생길만도 하죠. 솔직히 제가 봐도 그렇게 느껴지니까요.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저도 굉장히 곤란해요. 이런 기사는 개봉 이후에 내주시면…(웃음).”
배우 이선균(42)은 언제나처럼 진솔했다. 수개월간 열정을 쏟아 부은 작품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완성돼 세상에 나온 상황. 누구보다 당혹스러웠을 그는 흔들림 없이 담대함을 유지했다. 주어진 상황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다시 앞을 내다보는 내공이 그에게는 있었다.
범죄조직 중간보스 현정(김혜수)이 펼치는 핏빛 누아르인 줄 알았던 영화 ‘미옥’(감독 이안규)은 어쩐 일인지 현정을 사랑하는 행동대장 상훈(이선균)의 지독한 멜로로 귀결됐다. 성실히 자신의 욕망을 좇던 현정이 모성애에 발목 잡혀 모든 걸 내던져버리는 상황은 꽤나 의아함을 던졌다. 이 영화의 제목이 ‘상훈’이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선균은 “원래 대본에는 미옥이 바라보는 관점이 중점적으로 담겼다. 미옥의 시선으로 본 상훈 김회장(최무성) 주환(김민석)과의 관계가 각각 그려졌다”며 “근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배제되다 보니 미옥의 모성애만 부각되고, 드라마적으로 끌어가는 역할을 맡은 상훈이 중심에 놓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가 오히려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부각했다는 평이 있던데, 무슨 뜻인지 충분히 공감합니다. 범죄조직이 여성을 이용해 몸집을 불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관객 입장에서 충분히 그런 얘기를 하실 수 있죠. 변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이 작품을 ‘여성영화’라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범죄누아르’로 봐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이선균에게는 첫 누아르 작품이었다. “우리나라 남자배우 중 조폭 역할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잖아요. 근데 저 안 해봤었거든요(웃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본인마저 반신반의했다. ‘이걸 왜 나한테 줬지? 다른 배우들이 많이 거절했나?’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왠지 호기심이 생겼고,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드라마 자체에 반전이 있거나 사건이 중심이 되는 시나리오가 아니었어요. 각자 아픔을 지닌 인물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욕망, 서로의 감정이 엇갈리며 형성되는 공기, 그리고 각 관계에서 느껴지는 헛헛함 같은 것들이 보여 좋았죠. 영화상에는 그런 지점들이 편집돼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본인 연기에 대한 평가도 가차 없었다. 이선균은 “초반부 상훈 캐릭터의 성격을 더 강렬하게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장 크다”며 “특히 일적으로 상대를 협박하는 장면에서 좀 더 다양한 표현을 넣었더라면 영화가 한층 재미있고 풍성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누아르에 도전해본 소감을 묻자 그는 배시시 미소부터 지었다. “만족감보다는 해봤다는 것에 의의를…(웃음). 아무래도 누아르 장르는 과장된 느낌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색함이 없지 않아요. 다음에 다시 한다면 그런 불편함과 뻘쭘함을 지우고 좀 더 자연스럽게 임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누아르를 해보고 싶어요.”
차기작은 아이유와 호흡을 맞추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tvN)다. ‘미생’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과 ‘또 오해영’의 박해영 작가가 의기투합한 작품. “얼마간 쉬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해서 방전된 느낌이에요. ‘다시 채워지지 않았는데 계속 나가도 되나’ 고민이 많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 싶었죠(웃음). 좋아하는 감독님이 주신 기회이니 잘 살려봐야죠.”
이선균은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 했다. 송강호 설경구 등 현직에서 건재하게 활동하는 선배들을 보며 ‘저 나이가 됐을 때 나도 (저들처럼)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자문(自問)해보기도 한단다.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관객에게 끊임없이 믿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좋은 작품이나 캐릭터 못지않게 저라는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죠. 내가 잘 살아야 연기하는 인물에도 그 모습이 투영되니까요. 너무 철없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꼰대가 되긴 싫고. 나이에 맞게 잘 살고 있나, 항상 고민이죠.”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