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재판에 과도한 비난, 법치에 어긋나… 매우 걱정”

입력 2017-12-02 09:53

김명수 대법원장은 1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공식석상에 서서 재판의 독립을 말했다. 그는 오전 이일규 전 대법원장의 서세(逝世·사망의 높임말) 10주기 추념식에 참석해 “재판의 독립을 흔들려는 시도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오후 신임법관들의 임명식에서는 “사법부 최고의 가치인 재판의 독립을 지켜가라”고 당부했다. 법관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두 자리에서 연이어진 대법원장의 발언은 최근 사법부를 향한 정제되지 않은 비난 여론에 대한 작심 비판이라는 해석이 컸다.

이 전 대법원장의 유족, 전직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의 뒤를 따라 추념식장인 대법원 중앙홀에 들어서는 김 대법원장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그는 연단에 올라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29년 전 선생께서 대법원장에 취임하던 때와 많은 차이가 있다”면서도 “우리는 오늘날 여전히 재판의 독립 내지 법관의 독립이라는 화두를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적인 권력의 간섭이나 강압은 군사독재 시대의 종국으로 자취를 감췄지만,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들은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이 아닌지요”라고 반문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어 “요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는 헌법정신과 법치주의의 이념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매우 걱정되는 행태”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때로는 여론이나 SNS를 가장하고, 때로는 전관예우 논란을 이용해 재판의 독립을 흔들려는 시도들이 있다”고도 했다. 추념사는 김 대법원장이 심혈을 기울여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념식에 참석한 법관들은 “강한 발언에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법부를 향한 정치적인 비난을 거론하고 정면 비판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최근 사법부는 국정농단 및 적폐청산 수사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과한 비난 여론에 부딪혀 왔다. 구속적부심 석방과 영장 기각 결정이 있을 때면 검찰과 정치권이 반발했고, 불구속 결정을 내린 담당 법관의 신상이 회자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꼬챙이라는 별명의 이 전 대법원장을 기리는 행사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고 법관들은 말했다. 이 전 대법원장의 기념 영상에서는 그가 박정희정권 시절 대법원 판사(현 대법관)로 재직하며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 공안사건에서 용기 있는 무죄취지 의견들을 밝힌 사례가 계속 소개됐다. 불편해진 국가 정보기관이 이 전 대법원장을 사찰했지만 아무런 흠결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일화도 소개됐다. “사법부 독립의 숭고한 뜻, 저희가 이어 가겠습니다”라는 글귀로 영상이 마무리되자 200여명의 전현직 법관이 박수를 쳤다.

김 대법원장은 오후 신임 법관들의 임명식에서도 법관이 가져야 할 최고의 가치가 재판의 독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별 재판을 온전히 독립해 담당하는 법관들 각자가 그 책임과 권한의 무게에 맞게 자신의 역량을 키워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떠한 유혹이나 불안, 위압(威壓)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