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월드컵이 조 편성을 마치며 상대가 모두 정해졌다. 러시아월드컵에도 만만한 상대가 없지만 한국의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역사는 ‘죽음의 조’에서의 사투나 다름없었다. 특히 2002 한·일월드컵 이전에는 조마다 우승후보급 강호가 1팀 이상 있어 1승조차 못했다.
첫 월드컵 본선 진출 대회인 1954 스위스월드컵에서 한국은 헝가리, 터키, 서독과 같은 조에 속했다. 우승·준우승국이 모두 이 조에서 나왔다. 헝가리는 당시 세계 최고의 공격수인 페렌츠 푸스카스가 이끌던 최강 팀이었다. 한국은 헝가리에 0대 9, 터키에는 0대 7로 대패했다. 팀당 2경기씩만 치르도록 돼 서독과는 맞붙지 않았는데 서독이 결승에서 헝가리를 누르고 우승했다.
오랜 침묵 후에 본선에 오른 1986 멕시코월드컵. 한국이 상대한 팀은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디펜딩챔피언 이탈리아, 강호 불가리아였다. 아르헨티나엔 1대 3, 이탈리아에 2대 3으로 패했고 불가리아와 무승부를 기록했다. 당시 무승부를 한 것만 해도 잘했다는 평을 들었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에서는 벨기에와 ‘무적함대’ 스페인, 남미 강호 우루과이와 같은 조였다. 월드컵 역사상 첫 조별리그 3패는 이때 처음 나왔다. 유일한 득점도 스페인전에서의 한골일 정도로 죽음의 조에서 처절한 쓴맛을 봤다.
1994 미국월드컵 때도 조 편성 운이 없었다. 디펜딩챔피언 독일과 스페인, 남미 다크호스 볼리비아를 상대했다. 하지만 한일월드컵 이전 대회 중 최고의 성과라는 호평을 얻을 정도로 경기내용이 좋았다. 첫 경기 스페인전에서는 후반 45분 서정원의 극적 골로 2대 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독일전에서는 패하기는 했지만 전반에 0-3으로 끌려가다 후반 들어 황선홍, 홍명보의 연속 골이 터지며 끈질기게 추격했다. 2무1패로 한·일월드컵 이전 최다 승점(2점)을 올렸다.
차범근 감독이 이끈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는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와 한조에 묶였다. 특히 네덜란드에 0대 5 참패를 당해 감독이 중간에 교체되기까지 했다. 1무2패로 예선탈락했고 네덜란드는 4강까지 올라갔다.
개최국이었던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맞상대는 포르투갈, 미국, 폴란드. 루이스 피구의 포르투갈 외에는 해볼만하다는 평이 나왔다. 결국 월드컵 첫 승을 포함, 2승1무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4강까지 올라간다. ‘죽음의 조’ 저주가 처음 풀렸다.
해외파가 많아졌고 자신감이 쌓이면서 2006 독일월드컵, 2010 남아공월드컵 때는 상대에 위압감을 느끼지 않았다. 조 편성도 과거처럼 나쁘지 않았다. 각각 1승씩을 거뒀고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원정 첫 16강 진출의 기쁨도 누렸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와 한묶음이 되자 ‘역대 최고의 꿀조’라는 환호가 나왔다. 하지만 자만심과 상대분석 소홀로 1무2패의 치욕적인 성적을 내 한·일월드컵 이전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