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가 설립자 김활란 박사의 동상을 두고 내홍을 앓고 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세웠던 친일행적 알림팻말을 강제 철거했고, 학생들은 학교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붙이며 학내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대학 내 친일 인물 동상 문제는 고려대 연세대 등 다른 대학에서도 반복돼 왔던 사안이다. 공과에 대한 사회적 합의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이화여대 학생들로 구성된 ‘김활란 친일행적 알림팻말 세우기 프로젝트 기획단’에 따르면 지난 13일 교내 김활란 동상 앞에 세웠던 팻말이 2주 만에 기습 철거됐다. 학교 측은 “오래전 동상이 세워져 긴 세월 이화 캠퍼스와 함께 한 사실 자체가 하나의 역사”라며 학생들에게 팻말을 자진 철거하라고 요구했었다. 자진 철거가 이뤄지지 않자 지난달 27일 학교가 직접 나서 팻말을 뽑았다. “영구 공공물의 교내 설치는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은 설치물을 철거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기획단 학생들은 학교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며 철거를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친일행적 알림 팻말을 치운다고 김활란의 친일행적이 사라지진 않는다”며 다시 팻말을 세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려대 인촌 김성수 동상, 한국외대 김흥배 동상, 연세대 백낙준 동상 등도 생전의 친일 행적 때문에 논란이 돼 왔다. 학생들은 이 같은 인물을 대학에 동상으로 세워 기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보고 있다. 이대 학생들은 꾸준히 김활란 동상 철거를 요구하며 포스트잇 붙이기, 계란 투척 등 항의 의사를 드러냈다. 고려대 학생들도 지난 7월 인촌 김성수 동상과 관련해 균형 있는 재평가를 주장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가 학생들의 비판까지 수용해 공식적인 기념비로 공·과를 모두 밝히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대의 경우 학생들이 (처음에는) 동상을 철거하려고 했지만 학교에서 거부하니 또 다른 진실을 함께 보자며 팻말을 설치한 것”이라며 “올바른 기록을 남기고 반성의 재료로 삼자는 정당한 자정 노력”이라고 말했다.
학교는 여전히 난감한 표정이다. 이대 측은 “‘초대총장 김활란 박사상’이라는 단 한 줄로 이루어진 설명은 이 동상을 보는 이들 각자가 자기 몫의 성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학교의 입장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고려대 관계자는 “김성수 동상은 건학이념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놓은 것이기 때문에 과오를 함께 적어놓는 작업은 진행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글=임주언 이형민 기자 eo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