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은 최근 정치권 등에서 ‘적폐청산’과 관련한 법원의 재판 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며 비난하는 행태를 지적하고 사법부 독립을 강조했다. 앞서 군의 ‘댓글공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석방되는 등 ‘적폐청산’ 관련 주요 피의자들이 석방되거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정치권과 여론은 이를 비난하고 나선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은 1일 대법원에서 열린 고 이일규 전 대법원장 서세(逝世) 10주기 추념식에서 “29년 전 이 전 대법원장 취임 때와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재판 독립’ 및 ‘법관 독립’이 화두”라며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마치 그러한 영향력이 있는 듯 가장하려는 시도들은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때로는 여론이나 SNS를 가장해, 때로는 전관예우 논란을 이용해, 때로는 사법부 주요 정책 추진과도 연계해 재판의 독립을 흔들려는 시도들이 있다”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는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의 이념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매우 걱정되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어지러운 상황에서 재판의 독립을 지켜내는 것이 대법원장의 첫째가는 임무임을 이 전 대법원장의 생애 앞에서 새삼 명료하게 깨달았다”며 “법관이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재판하도록 사법부 독립을 수호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숭고한 사명”이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법관 독립을 강조하며 내부 신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사법부 내부로부터 법관의 독립이 개혁 과제의 하나로 논의되는 지금 사법부 내부 신뢰가 높았던 효암 선생이 더욱 그립다”며 “제도적 방안도 필요하나 근본적으로 동료 법관으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이 어떤 부당한 압력도 선배들이 막아주리라 믿을 수 있고, 일선 재판장이 좋은 재판을 위해 고민할 때 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발 벗고 도와주리라 신뢰한다면 어떤 불신과 의혹도 나오기 어렵다”며 “사법부 독립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 시절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서 유일하게 ‘위법’ 소수의견을 내는 등 군사정권 시절 시국·공안 사건에서 여러 번 소신 있는 판결을 했다. 정치권의 영향력을 차단해 사법부 독립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