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작품을 통해 용해 시켜온 신자유주의 모순과 문제점들을 이번 작품에서 연극적 재현과 서사의 허구성을 걷어내고 극단 이와삼 단원들이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에서 불편함을 일으키는 이야기들을 묶었다. <너의 고민은 신자유주의랑 관계가 있어>, <몸, 나의 몸이 원망스럽다>, <페북과 정치에 대해>, <지금 우리는 연극을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실체를 알았다 해도 출구는 여의치 않다>, <너의 얘기를 듣고 싶어>와 2016년도에 구의역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스크린도어 실제 사망사건까지 생생하게 다룬다. 이번 연극은 자본주의 모습을 명명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놀이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향한 절망과 불편함
작가의 다수 작품에서 분노를 점화시키고 있는 것은 동시대의 모순된 자본사회이며, 뒤틀어진 삶이다. 그 삶을 버티고 있는 거대자본주의 사회 모순성과 불편함을 겨냥한다. <미국아버지> 는 신자유주의의 종점이라 할 수 있는 미국사회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작품이다. 미국과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이슬람 무장 세력에 의해 참수된 미국인 ‘닉 버그’의 참수사건(2004)을 아버지 ‘마이클 버그’의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재구성됐다. 마약중독으로 처참히 무너지는 한 아버지의 삶과 죽음, 희망의 싹이 자라나지 못하는 인간의 절망을 담아내고 있다.
1960년대 히피문화와 미국의 경제심장인 월스트리트 금융시장에 넘쳐흐르는 자본주의의 도덕적 타락과 절망을 마약중독자 모습으로 대체시키며 미국 발 자본주의를 따라가고 있는 한국사회를 동일화 된 시선으로 바라본다. 미국자본주의를 뒤 쫒고, 패권국가의 문화숭배주의는 타락과 삶의 절망성만 넘쳐나고, 테러와 세계전쟁의 불씨를 당기고 있는 분노의 사회다. <햇빛샤워>에서 분노는 한국사회 좁혀진다. 극중 인물 ‘광자’가 마주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어두운 ‘씽크홀’은 죽음으로 빨아들이는 냉혹한 사회구조이며 어두운 타자의 시선이다.
고아로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근무하며 지하방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광자, 가슴으로 자라나지 못하는 삶의 욕망은 죽음으로 찢겨진다. 배려, 소통, 관계가 부재한 불편한 시선의 형성은 절망만이 숨을 쉬는 사회다. 살아가는데 불편함은 균형의 방향을 놓쳐버린 양극화된 사회구조에서 갈라져 나오는 고장 난 자본주의 현상이다. 대한민국은 광풍의 경제성장과 정치적 파동 속에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달려가고 있다. 소외는 절망과 분노의 시선으로 자라나고, 더딘 계층을 보듬는 온기는 대한민국 사회를 감싸는데 인색하다. 한국사회를 끌고 가는 거대기업은 자본 중식을 확장하면서도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정하다.
삶의 해수면으로 건져 올릴 수 없는 삶의 양극화는 모순과 극단적 개인주의, 불편함, 관계·소통의 부재, 자본의 탐욕과 욕망이 뒤섞여진 채 자라나고 있는 분노의 내면은 도덕과 윤리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회로 이어진다. <옥상 밭 고추는 왜> 에서는 사회구조와 현상을 옥상이라는 공동체 삶의 경계를 통해 들여다보고 있다.
옥상은 삶의 경계이며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지대(址臺)이다. 그 경계에서 타인과 관계가 형성되고 살아가는 온기가 형성된다. 극중 인물 ‘현자’(고수희 분)가 살아가는 다세대 연립주택의 재개발로 ‘한번 잘 살아 보겠다’는 희망을 품는 인물이다. 같은 연립에 사는 ‘광자’가 재건축 사업에 동의를 안 해준다는 이유로 옥상에 심어 놓은 광자 고추를 매일 싹쓸이 한다. 옥상 ‘고추’로 투영된 광자·현자가 살아가는 삶은 도덕과 윤리가 실종되고 있는 동시대의 현상이다. ‘있어야 사는데, 없어서 못살아가는’ 삶의 절망은 사회를 향한 분노로 도화선이 되고 정의는 함몰된 채 시대를 겉돈다. 절망, 죽음, 소외, 불균형, 양극화, 윤리와 도덕의 상실, 정의의 부재된 사회로 좁혀진다. 자본의 권력과 탐욕으로 얼룩진 불편함은 오늘의 시대다.
<빈의자>, 불편한 놀이
극단 이와삼의 신자유주의 놀이는 불편한 놀이다. 관객 입장도 선돌극장 무대 뒷 편 배우 분장실을 통해 입장시킨다. 빈 의자 놀이는 연극적 환영성 보다는 관객이 실제 이들 삶을 따라가게 만드는 구조로 설정되어 있다. 에피소드 사이에 신자유주의 학술적 개념을 이해시키며 <빈의자>놀이는 실제 오늘날 삶을 연결한다. 뛰고,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신자유주의 ‘안’과 ‘밖’ 세상의 삶을 움직임으로 이미지화 하고 7개의 에피소드로 토해내는 배우들의 진실소리는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빈의자>놀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불편한 실체의 허물을 ‘리얼토크’로 벗겨낸다.
첫 광준의 에피소드는 소비자본주의 민낯을 대상으로 삼는 놀이다. 광준(황성하)는 배우생활을 하면서 결혼과 출산준비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실제 이야기로 구성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출산과 결혼 준비로 극단생활을 하면서 쉬게 된 광준은 결혼식장과 산후조리원 비용에 놀란다. 사진 한 장 3만원, 원판 사진 한 장에 30만원 하는 사진스튜디오 가격에 ‘자유롭고 싶어 배우를 하고, 극단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지만’ 돈 때문에 결국은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에피소드는 소비의 욕망을 부추기는 삶에 소외와 욕망의 결핍을 잉태하는 신자유주의 삶과 연결시킨다.
돈을 벌기위해 극단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국립극단 작품에 출연의사를 밝히는 동준은 동규의 말 “그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설명에도 삶속으로 파고든 경제용어 개념을 이해 못한다. <빈의자> 놀이는 동준이 결혼 준비로 겪어온 고백의 과정을 재현하는 놀이로 이어진다. 실제와 사실을 재구성하는 놀이를 통해 동준은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 속에 살아가는 삶을 재현되는 놀이를 통해 바라보며, 삶의 허무와 소비 욕망만을 생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영상 카메라는 동준의 표정과 재현되는 놀이를 교차로 담아내고 연극이 허구가 아닌 실제적인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쫒아간다.
동준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밖’은 소비주의·철저한 자본주의가 가동되는 세상이며, 결국 밖의 경계는 가난의 기준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소외와 결핍을 잉태하는 구조로 둘러싸여 있다. 은주처럼 사랑하는 연인과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으로 만족해도 가난을 이길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은( 에피소드2) ‘아름다운 가게에서 싼 가격에 옷 하나를 득템’ 했다고 호들갑을 떨어도 가난은 또 다른 가난의 기준을 제시하고 생산해 내는 이중적인 욕망만을 키워 내는 사회다.
‘좋아요’를 누르는 페북은 스마트 권력화가 되었고, 소통 창구의 역할을 하는 SNS도 진실성이 훼손되고 삶의 건강한 유통구조로 연결되어진 세계가 아니라 ‘좋아요’에 의존된 중독성을 보임으로써 소비자로 만들고 있는 신자유주의 현상이다. 소비자유주의는 가난과 소외를 생산하며 ‘페북’도 거대 자본주위의 상징과 도구로 이용된다. 정치소비도 권력화 된 도구를 이용해 형성하지만 소비지배 권력에 이끌려 가는 수동적인 시민사회에 보다는 사회현상에 능동적으로 대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연책자에는 한병철의 <심리정치>가 언급한 페북 현상에 대해서 인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소비하고 소통하면서 , 즉 ‘좋아요’ 버튼을 누르면서 스스로 지배관계 속에 빠트린다. 신자유주의는 좋아요 자본주의다’ 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연극을 하고 있다> 에피소드는 ‘ 예술지원 행정 시스탬’ 을 대상으로 하는 놀이다. 극단생활을 통해 작품을 선택하고 배우로 주어진 역할에 집중해야 할 단원들은 ‘ 연기술이 늘어가는 게 아니라 행정 능력만 키워내는 경쟁구조 에서 연극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다루고 있다. 배우 연희는 “행정인력이 돼 버렸나봐. 신자유주의는 유령 같아. 잡아도, 잡아도 잡히지 않아” 라는 말이 공감을 준다.
이밖에 이들 삶으로 연결된 에피소드에서 담고 있는 대기업, 교육, 결혼, 출산, 인간관계, 명품, 페북, 정치, 비정규직, 가난, 생존, 좌파와 삶, 연극, 예술행정의 모순성과 불편함속에서 터져 나오는 이야기들은 재현에서 탈피해 살아가는 현실고백과 극단 단원들의 체험(?)들이 다큐멘터리처럼 나열된다. 극중 인물로 환치하는 허구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삶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이야기다. 무대에 놓인 빈 의자들은 자본주의를 명명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상징한다. 의자만 놓여 있는 무대는 거대한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과 연결 있는 오늘의 ‘안’과 ‘밖’의 세상이며, 소외와 결핍만 잉태한다.
배우들에게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과 거대 자본주의는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피부로 이해해야 할 구조이며 현실이고 현재이다. <빈의자> 놀이는 치열한 시장경제 시스템에 뛰어든 놀이이며, 빈 의자를 향한 쟁취와 탐욕의 욕망은 피곤함이 누적되고 빈의자는 소비주의적인 욕망만을 점화하는 화구(火口)다. 욕망과 탐욕은 거대자본과 시장경제에서 소외된 인간을 마주하고 삶은 결핍과 소외감으로 숨을 쉰다.
이번 작품은 그동안 장우재식 연극을 보아온 관객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 깊이 박혀있는 신자유주의와 그 경제 시스템을 불편함을 직접적인 놀이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과 극단 단원들이 이 지점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극단의 탐구 방향성과도 연결된다 할 수 있다. 이와삼은 이러한 자본과 환경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덤블럭 펀딩’을 만들고 이번 신자유주의 <빈의자> 트랙B를 무대화 했다고 밝히고 있다. 배우들이 토대 해는 열기와 말은 공감을 하지만, 날 것 그대로 담아내는 놀이 보다는 촘촘하고 두껍게 극 속으로 탑재한 장우재식 소리가 강하게 들린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