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국무총리가 ‘국정농단’으로 사상 초유의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능함을 질타하면서 애초에 대통령을 해선 안 됐다고 말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보수-진보 이념 갈등을 증폭시킨 보수 정치권도 비판했다.
고 전 총리는 30일 출간한 ‘고건 회고록: 공인의 길’에서 도지사·장관·시장·총리·대통령권한대행 등으로 이어지는 공인으로서의 삶을 술회하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정말 답답했다”며 “오만, 불통, 무능… (대통령은) 하시지 말았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이나 하셨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 전 총리는 지난해 ‘촛불정국’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박 전 대통령에게 진언했던 일화도 밝혔다. 그는 “2016년 10월 30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사회원로 몇 명과 함께 차를 마시며 ‘국민의 의혹과 분노는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성역 없는 수사를 표명하고 국정시스템을 혁신해서 새로운 국정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진언했다”며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촛불집회가 일어났고 탄핵안이 발의·가결됐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 주변의 보수 정치권을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는 “당사자가 제일 큰 책임이 있겠지만 그 사람을 뽑고 추동하면서 진영대결에 앞장선 사람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며 “박근혜를 검증 안 하고 대통령으로 뽑은 것 아니냐. 보수진영이 이기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진영대결의 논리이고 결과”라고 지적했다.
고 전 총리는 1962년 내무부 수습사무관으로 공직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뒤 전남 도지사, 교통부 장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내무부 장관, 서울시장, 국무총리, 대통령권한대행 등을 역임했다. 그의 삶 자체가 한국 현대사를 그러낸다.
고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공인으로서 내 삶은 우리나라와 서울의 현대사와 깊게 엮여 있어 ‘무엇을, 왜, 어떻게 하려 했고, 실제 어떻게 했는가, 또는 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회고의 기록을 남기는 일은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의무라 생각한다”며 회고록 집필 이유를 설명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