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의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이후 중국에 원유공급 중단을 재차 압박하고 나섰다. 대북제재 결의안을 논의할 때마다 미국은 원유금수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번번이 중국의 반대로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지난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통과시킨 2375호 결의안에서도 유류제품 30% 및 섬유제품 수출 금지방안 등이 포함됐지만 원유 금수조치는 제외됐다.
◇헤일리 “트럼프, 中에 대북 원유공급 중단 요구”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29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한에 공급하는 원유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주요 원유 공급원인 중국은 2003년 원유 공급을 중단했고, 북한은 협상테이블에 나왔다”며 “우리는 중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헤일리 미국대사의 발언은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원유금수 조치이며, 여기엔 중국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중국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보복’ 언급에도 불구하고 원유 금수 조치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6차 핵실험 9일 만인 지난 9월 12일 새 대북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당시 미국은 원유공급 중단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해외자산 동결 등 초강경 대북제재안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원유금수 조치는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초래할 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결국 원유금수와 김정은 제재방안이 제외된 채 결의안이 통과됨으로써 대북제재 ‘실효성 논란’도 불거졌다.
◇중국, 송유관 끊으면 북·중 관계 ‘파탄’ 우려
중국도 원유공급을 끊는 게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라는 걸 알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유금수조치가 현실화되면 북한이 열흘도 못 버틸 거라는 관측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원유 공급 중단 카드를 꺼내들지 않고 있다. 기술적 문제를 포함해 몇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우선 중국과 북한을 잇는 송유관 내부 파라핀이 꼽힌다. 중국 단둥시 외곽에서부터 북한 평안북도 화학공장까지 지하에 매설된 이 송유관은 거리가 약 30㎞에 달한다. 중국은 이 송유관을 통해 매년 50만t 가량의 원유를 북한에 공급하고 있다. 비공식라인을 통해 중국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까지 합하면 공급량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유공급 중단을 위해선 송유관 밸브를 차단해야 하는데 정치적 문제 외에도 기술적 문제가 있다. 원유에 파라핀 성분이 많아 공급 중단기간이 길어질 경우 관 내부에 있던 파라핀이 굳으면서 송유관을 아예 쓸 수 없게 될 위험성이 있다. 중국은 2003년 북핵위기 당시를 제외하고는 이 송유관 밸브를 차단한 적이 없다.
중국은 원유 공급을 중단할 경우 북한이 반발하는 것을 넘어 적대국으로 돌아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 병행)을 주요 대북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원유금수 조치가 북·중 관계 파탄으로 이어지면 북한에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고, 이는 원치 않는 한반도 긴장 고조로 이어질 거라는 게 중국의 고민이다.
실제 중국 내에서도 원유 금수 조치의 실효성에 대해 논란이 있다. 원유금수 조치가 거론된 지 10년이 넘은 만큼 북한이 이미 대비책을 마련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러시아 등 다른 루트를 통해 휘발유 등의 가공유를 대거 수입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원유금수 조치를 감행할 경우 김정은에게 치명상을 준다는 보장은 없는 반면, 북한에 대한 주요 ‘지렛대’가 사라질 위험성을 중국은 우려하고 있다.
◇미국 압박에 중국은 ‘난색’
중국은 북한의 ICBM 도발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도 미국의 대북 원유공급 중단 요구에는 일단 선을 긋고 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사일 발사 이후 정례브리핑을 통해 “중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엄중한 우려와 반대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준수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한반도 긴장을 가속하는 행동을 중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은 그러나 미국의 원유공급 중단 압박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다. 우하이타오 유엔주재 중국 차석대사는 이날 안보리 회의에서 “중국은 유엔 결의안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며 “대북 제재 결의가 적절한 수준의 인도주의적 활동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갑작스런 원유공급 중단은 북한 주민들에게 더 큰 충격을 준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풀이된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