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압박, 거래처 갑질, 그리고 기다림… ‘영업사원의 하루’ 동행기

입력 2017-11-30 09:43 수정 2017-12-01 09:05
-영업 분야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영업이요?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가장 많이 뽑는 분야잖아요”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서 보람을 느낄 때가 있나요?
“꿈 속에서도 이 말 한마디만 나오면 너무 행복해요. ‘주문 진행해주세요’”

A씨(31)는 국내의 한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서글서글한 성격 탓에 영업이 자신에게 잘 어울릴 거라는 믿음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막상 회사에 입사해보니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매사 긍정적인 A씨는 영업사원 평가에서 상위권에 들 정도로 일에 푹 빠져 있다. 입사한 지 고작 몇 개월 된 신입사원이지만 최근 사내 영업 실적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압박감’이다.


◇영업사원 하루의 시작

그를 만난 11월 마지막 째 주는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인터뷰 할 시간 조차 내달라 하기 힘들 정도. 그의 오른손에는 회사에서 제공한 태블릿PC와 왼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쉴 새가 없었다. A씨는 8시 출근 시간보다 30분 전 까지 도착해야 하는 탓에 아침도 거른채 일찍 서둘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것이 신입사원의 자세”라고 웃었다. 오늘 방문해야 할 병원 리스트를 체크하고, 아침 회의 시간에 발표할 최근 영업 진행 상황 자료를 손에 쥐고 지하철에 오른다.

회사에 도착해 진지한 분위기의 회의장으로 들어간다.
“자, 각자 월별 판매 전략과 지난달 부진사유 피드백 하세요.”
아침 회의시간은 누구든 피해갈 수 없다. 월 말 평가에서 주어진 매출액을 다 채우지 못하면 매달 초마다 이전달 판매 부진자들이 부진사유 피드백을 하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코스다. 판매 부진을 겪는 영업사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요새 무슨 생각으로 출근하고 있어요?”

판매 부진이 심각한 사원을 향한 상사의 말 한마디에 회의장 분위기는 확 가라앉는다. 또 담당 지역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면 담당해야 할 지역이 좁아져 회사 내 입지도 좁아지기 마련이다. 결국 A씨의 동기 중 몇 개월이 안돼 10%가 퇴사 한 이유이기도 했다. A씨는 이 시간에 가장 큰 압박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추운 겨울이 싫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탓에 몸 속까지 들어오는 한기가 너무 싫다. 그래도 그는 오늘도 들러야 할 병원 7~8군데를 선정한다. 추위를 뚫고 병원 앞에 도착해 잠시 10분동안 서성인다. 마지막 ‘최종점검’을 하는 것이다. 의사나 구매 담당 실장을 상대로 기존 타사 제품에서 자사 새 제품으로 교체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제품에 대한 매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 실수는 용납이 안된다. 긴장감을 풀기 위한 긴 호흡과 함께 옷매무새도 한 번 가다듬는다.

◇영업사원에겐 익숙한 ‘기다림’

“안녕하세요? XX제약회사에서 왔는데요. 혹시 원장 선생님과 상담 가능할까요?”
“지금 진료중이셔서 기다리셔야겠는데요.”
“네 기다리겠습니다.”

A씨와 함께 미팅 시간을 기다린 기자도 길어진 시간 탓에 이내 지쳤다. 기다린지 분명 1시간30분이 넘었는데도 환자들의 치료는 계속될 뿐이다. 우선순위는 환자였기 때문이다. 모든 환자의 진료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제약 영업사원의 기본 자세였다. 모든 진료가 끝나고 2시간이 지나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긴 시간 기다림 끝에 의사와 미팅을 마치고 나온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분명 본인이 뜻한대로 또는 뜻하지 않은 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영업이다. 의사와의 만남을 위해 기다린 시간이 제법 길어진 탓에 어느 덧 오후 2시가 됐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상품 설명과 판매에 열을 올렸더니 배에서 신호가 온다며 병원 근처 칼국수 집으로 향한다.

“칼국수 한 그릇 주세요.”
칼국수를 먹는 도중에도 그의 한 손에는 전화기가 들려 있었다. 혹시나 병원에서 올지 모를 주문 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른 지역에 있는 병원으로 장소를 옮기려 핸드폰 메인에 저장해 놓은 실시간 버스 도착 앱을 켠다. 그곳은 개원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병원이었다. 처음 가보는 병원이다. 새 병원인만큼 제품 설명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그 곳 역시 거래처가 이미 다 정해져 있어 불청객을 본 마냥 반응이 시큰둥하다.

“어서오세요”
“저 XX제약회사에서 나왔는데, 원장님과 미팅 가능할까요?”
“아..네 잠시만요”
손님인 줄 알고 대하는 표정과 영업사원임을 밝힌 후의 표정은 달라 보였다. 그래도 A씨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손님이 없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의사와 만날 수 있어 다행이네요”

해가 저물어 어느 덧 퇴근 시간이 다 되간다. 하지만 그에겐 그것이 퇴근이 아니였다. 오늘 아침 출근 시간에 생각해 온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 전 마지막으로 다른 병원을 방문해본다.

“안녕하세요. XX제약회사에서 왔는데요”
“죄송한데 다음에 와주세요. 원장 선생님이 바쁘셔서요”
문전박대를 당해도 내일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퇴근 준비를 한다.

◇영업사원의 ‘진짜’ 속마음

퇴근하는 그에게 신입 영업사원으로서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영업에 관심이 있어 지원하신건가요?
“솔직히 그건 아니에요. 영업이라는 직군이 흔히 기업들이 가장 많이 뽑기도 하고 제 주위를 봐도 문과를 졸업한 친구들이 가장 많이 지원하는 분야이기도 해요. 그래서 지원하게 됐죠. 보통 대학생 때 어느 대회에서 상을 수상하거나 공모전의 경험이 없으면 영업 분야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분야가 한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솔직히 영업 분야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은 많진 않을거에요.”

-영업 실적이 좋아 신입사원 대표로 상까지 수상했는데 비결이 있나요?
“솔직히 영업이라 하면 ‘리베이트’와 ‘접대’가 가장 많이 떠오르죠. 하지만 최근 ‘김영란법’ 등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영업 활동 분위기도 많이 바꼈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들을 접대를 하는 것 보다 어떻게 해야 그들의 이익을 올려주느냐가 가장 중요하죠. 병원도 최대한 이익이 남는 편에서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각 병원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쉬지 않고 거래처를 찾아 다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의사를 상대로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참 어려워요.(웃음)”

-회사에서도 영업사원들에게 지원을 많이 해주나요?
“신입사원들에게는 투자를 많이 안하죠. 가령 A병원에 B제품을 납품을 하려면 최소 A병원에서 B제품을 사용해 볼 수 있도록 샘플정도는 지원해줘야 하는데 최소한 그것 마저도 없거든요. 무기도 주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란 것과 같은 셈이에요. 또 영업 사원으로서 연말이 다가오면 관리 차원보다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거래처들이 있는데 회사에서 나오는 보너스나 따로 명절 선물용이 없으니 난감하죠.”

그는 기존 거래처는 유지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하고 계속 새로운 거래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은 어쩔수 없이 영업사원이 갖고 가야 할 ‘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의사들은 대체로 보수적이어서 자신이 사용하고 있던 제품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어느 회사 제품이든 가격 차이 말고는 상품의 질이 다를 것이 없어 영업 하기는 더욱 힘들다.

국내 제약회사는 500개 정도다. 그만큼 제품 영업에 대한 회사들의 경쟁은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회사들마다 내놓는 제품들이 차별성이 크진 않다. 즉 병원 입장에서는 A사 제품을 써도 그만이고 B사,C사 회사 어느 것을 써도 다를 것이 없다. 이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 경쟁력’과 ‘영업사원의 능력’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종일 무척 바빠 보였는데 평소에도 이렇게 바쁘신가요?
“월말까지 마감해야 하거든요. 지금 제가 팔아야 할 목표치를 채우지 못해 큰일이에요. 이틀 남았는데 목표 매출액을 채워야해서 정신이 너무 없었네요.”

-영업이라고 하면 감정노동일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어떤가요?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도 다 참아야죠. 영업은 계속 해야 하니까요.”

그는 몇몇의 의사들은 신입사원을 기피한다고 토로한다. 가령 규모가 좀 있는 병원 원장은 신입사원이 병원에 찾아오면 눈 길 한 번 안주고 이사 정도 되는 사람이 와야 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신입사원 타이틀로 그들에게 영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울 때가 많다.

또 어떤 의사들의 이해못할 ‘갑질’에 화가 날 때도 있다. A씨는 병원 측과 협의를 통해 B단체에서 병원을 내원하는 사람들에게 20% 할인을 해주고, 기존 타사 제품에서 A씨 회사의 제품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을 얻어 냈다. 병원 입장에서는 큰 규모의 B단체 사람들만 찾아 온다면 병원 홍보와 함께 매출을 크게 올릴 수 있었다. A씨 또한 그 계약만 성사시키면 영업 실적을 올릴 수 있어 몇 번이고 B단체를 직접 찾아갔다. 몇 번의 고생 끝에 겨우 B단체 측의 동의를 얻어낸 후 병원 홍보글을 B단체 SNS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해당 의사는 약속을 뒤엎고 SNS홈페이지에 이미 글이 올라가 홍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A씨 회사 제품을 쓰지 않았다. 결국 홍보만 하고 영업사원에게는 ‘나 몰라라’하는 ‘갑질’이었다.


하루 동안 지켜 본 ‘제약영업’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는 질문에 A씨는 웃으며 한마디를 남긴다.
“힘들지 않은 일이 있을까요. 월급 받는 만큼 회사에 돌려줘야죠. 그것이 영업사원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A씨의 머릿속은 당일 실적을 정리하고 내일 해야 할 일들로 가득차 있다. 손으로는 상사에게 퇴근을 알리는 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내일도 또 같은 하루가 계속될 것이다.

글.사진=안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