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 발사는 75일 간의 침묵 끝에 이뤄졌다. 미국이 테러지원국 재지정 등 대북 강경 기조로 돌아서자 다시 대미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내년 초쯤 핵탄두 탑재 ICBM 실전 배치를 선언한 뒤 ‘핵보유국’ 지위 공식화를 위한 북·미 직접 협상을 집중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조만간 화성 15형을 추가로 발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이번 발사가 ‘시험 발사’였다고 주장했다. 아직 실전 배치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음을 암시한 셈이다. 북한은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 12형’을 지난 5월 처음 발사한 후 4개월 만인 9월에 ‘전력화’를 선언했다.
특히 8∼9월 사이 이뤄진 2차, 3차 화성 12형 시험은 실전 상황을 상정한 정각(正角·30∼45도) 발사였다. 이 미사일은 일본 상공을 통과해 태평양에 낙하했다. 북한은 당시 발사 결과를 공개하며 시험 발사가 아니라 ‘발사 훈련’이라는 표현을 썼다. 북한이 이런 로드맵에 따라 화성 14형과 화성 15형 등 ICBM급 미사일로 비슷한 도발을 계속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북한은 이번 ‘정부 성명’에서 자신들의 핵·미사일 개발이 “미제의 핵공갈 정책과 핵위협으로부터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수호하고 인민들의 평화로운 생활을 보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미국 주도의 추가 제재 논의가 시작되면 이를 ‘압살 책동’이라 비난하며 추가 도발 명분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이번 도발은 ICBM 완성을 위한 기술 축적 성격이 강하다. 동시에 미국이 대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대북 압박을 더욱 강화한 데 대한 반발로도 볼 수 있다.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에 따른 경제 상황 악화의 출구를 미사일 발사에서 찾았다는 의미다. 합동참모본부는 “체제 결속을 도모하고 대미 협상을 압박하는 등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최근 국방과학을 비롯해 나라의 모든 부문에서 일어나는 눈부신 성과는 조선노동당이 선택한 병진노선과 과학중시 정책의 빛나는 결실”이라면서 “역사의 온갖 풍파 속에서도 끄떡없이 우리 당의 위업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영웅적 조선 인민만이 이룩할 수 있는 위대한 승리”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말한 것은 2012년 집권 이후 처음이다. 북한은 지난 9월 6차 핵실험 때 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국가 핵무력 완성의 완결 단계 목표 달성에서 매우 의의 있는 계기”라고만 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실제로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보기는 이르다”면서 “자신들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시위하는 성격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만큼 앞으로는 도발보다는 대화에 무게를 두며 국면 전환을 시도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화성 15형 시험 발사 지도가 조선노동당과 공화국 정부의 위임에 따라 이뤄졌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당과 정부의 ‘위임’을 받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꽤 이례적이다. 영문 보도문은 ‘허락’ 의미가 내포된 ‘authorization’으로 번역했다. 자신들이 1인 독재 체제가 아니라 정상국가임을 강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